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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59 노 화 엄 강 수〈부산종친회고문〉  詩 함박 눈 무량으로 내린 겨울 밤 장작불로 오롯이 다져진 불씨 화로에 익은 불쏘시개 담아놓고 할머니는 손주들 불러 모아 맛있는 옛날이야기에 꽃이 핀다 화롯가에 여린 가슴 서로 내 밀며 쬐는 얼굴 붉으락푸르락 웃지만 등어리는 싸늘한 얼름 덩어리 손주들 등어리 살며시 어루만지며 내손이 약손이다 내손이 약손이다 할머니는 쉼 없이 흥얼거린다 손주들은 멀리 떠난 꿈나라에서 예쁜 몽환으로 즐겁게 노니는데 새벽닭이 여명을 재촉하여 목청을 한껏 높여 덩달아 울고 바르르 떠는 문풍지 소리에 놀라 화들짝 날이 샌다 노화는 식은 재 한줌 남기고 할머니는 재만 남은 하얀 가슴으로 아득히 천상으로 가셨다 못다한 옛 이야기는 기약도 없이 * 노화는 화롯불 화로(火걙)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