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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 안춘생 · 조순옥 · 박영준 · 신순호 선생 69 잡은 신건식 · 오건해 · 신순호 가족은 임시정부 대가 족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신건식은 임시정부 요인으 로 활동하면서도 의술(醫術)로 사람들을 보살폈다. 오건해는 병환으로 고생하는 이동녕 등을 돌보는 한 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대모 역할을 하였다. 신순 호는 그런 부모와 함께 공사(公私)로 임시정부 사람 들을 도왔다. 1940년 일본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한 박찬익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이 신건식-박 찬익 가족의 교분은 더욱 두터워졌으며, 박영준과 신순호의 애정은 깊어졌다. 그렇게 또 한 쌍의 광복 군 부부가 탄생했다. 1910년대부터 이어진 양가의 친분과 한국청년 공작대에서부터 이어진 박영준-신순호의 인연은 1943년 12월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다. 대한민국임 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결혼식의 주례는 외무부 장 조 소앙이 맡았으며, 결혼증서에는 주석 김구가 주례로 이름을 올렸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완구는, “비록 성은 다르지만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결혼 을 진심으로 축하”하였다.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던 신순호는 광복 후 박영준과 함께 주화대표단의 교민 보호 활 동에 앞장섰다. 신건식-박찬익으로 이어진 대가족 은 임시정부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대중 외교활동을 책임지며 활동하다가 1949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 었다. 독립운동을 시작하여 평생을 함께 한 부부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신순호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 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박영준 · 신순호 결혼 기념사진과 결혼증서(경기도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