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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유동열 선생 69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군인 으로 유동열(柳東說, 이명 柳東烈, 柳東悅, 柳靑 松, 호는 春郊)은 평북 박천군 박천읍 매화리 에서 유종식(柳宗植)과 모친 최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숙부가 박천 수비대장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무인 집안으로 추정된 다. 그는 19살 때 사촌형과 함께 미국으로 건 핵심공적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참모 총장 등을 맡았다. 만주에 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 다가 1930년대에 임시의정 원 의원, 국무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한국광복군 참모 총장 등을 역임했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유동열 선생 한국광복군 참모총장 지내 미군정 통위부장으로 국군 기틀을 마련 일본 육사 졸업하고 대한제국 군인으로 1948년 8월 31일, 이 날 미군정의 군사권이 대한민 국 정부로 이양되었다. 미군정 시기에 국방부 역할 을 하던 곳은 통위부(統衛府)였다. 통위부가 행사하 던 군사권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에게 넘겨준 것이다. 당시 통위부장은 유 동열(柳東說), 국방부 장관은 이범석(李範奭)이었다. 유동열은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 참모총장 으로 군사정책을 총괄하던 인물이었고, 이범석은 광 복군 참모장 출신이었다. 대한민국의 군사권이 임시 정부 참모총장의 손을 거쳐 광복군 출신에게 넘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79년 3월 26일 평북 박천 출생 ● 1903년 11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 1906년 대한제국 육군 기병대 대장(정위), 서우학 회 평의원 ● 1911년 소위 ‘105인사건’으로 체포돼 옥고 ● 1918년 6월 한인사회당 군사부장겸 군사학교장 ● 1919년 2월 ‘대한독립선언서’ 39인 대표 참여 ●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참모총장 ● 1922년 8월 대한통군부 군정위원 ● 1929년 만주 국민부 중앙위원, 조선혁명당 중앙 집행위원 ● 1935년 7월 남경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군사부장 ● 1939년 임시정부 참모부장 ●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참모총장 ● 1946년 6월 미군정 통위부장 ● 1950년 10월 18일 6·25전쟁 중 납북되어 평북 희천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