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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達 諸公들과 뜻을같이하던中 公은 朴在燁 梁在興公들과 上京할 計劃이던차 同擧事의 主動者이신 宋箕勉公의傳喝로 盧亨来公이 太極旗製作을 促慂해왔으므로 公은 上京의 뜻을 바꾸어 快히 이에 同調二八日까지 七千枚를 完成하였다. 二九日下午 一時부터는 馬山面 新場里 장터에서 宋箕勉公의 宣言文 朗讀에 이어 劉性烈 李根浩 林學主公의 先唱으로 大韓獨立萬歲 시위에 드러가니 公은 이에合勢하여 高時相 梁在興 朴在燁公과 함께 장안의 二千徐 群衆에게 呼應토록 啓導하였다. 이때 日警에게 宋箕勉 劉性烈 李根浩 宋汝直 羅相俊公 以下 六人이 被逮被拘禁되니 群衆의 絶叫가 拘束者 救出運動으로 熾烈化하였다. 公은 高時相 梁在興 朴在燁公들과 被囚同志를 奪回코져 群衆의 先頭에서 指揮하였다. 日警의 銃擊으로 李東洪 梁在興 公이 負傷하였으나 同志救出에 成功아였다. 이어 舒川을 向하여 示威하며 韓山 境內 함배지기에 이르렸을때 急速出動하여 侍衛隊에 겨냥하는 日帝憲兵隊앞에 나타난 權益采郡守에게 公은強勸하여 萬歲를 부르도록 하였다. 力不足 解散後에 公은 被逮되어三年言渡를 받고 公州獄에서 一年六月服役後 艱辛히 出獄한後 華陽私立學校敎職에 게시어 學徒들에게 獨立思想을 鼓吹하니 每日같이 번갈아 엿장수로 假裝한 日警들에게 再三 連行되어 拷問을 當하시고 最後로는 納稅拒否運動을 하시다가 極刑을 받으신 公은 一九四五年隆七月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