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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5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5월의 독립운동 지 근우회 본부에서 꾸준히 활동한 기독교계 여성운 동가들도 있었다. 근우회 평양지회장이었던 조신성 은 1928년 임시 전국대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출되었 고 1930년에는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처 럼 1928년 임시 전국대회를 계기로 근우회에서 사 회주의계와 기독교계의 연대가 약화되었으나, 근우 회 내에서의 조신성의 입지 강화 등을 통해 연대체로 서의 면모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근우회는 1929년 7월 27일에 제2회 전국대회를 열고 다음과 같이 강령을 수정하고 행동강령을 제정 하며 결속력을 다졌다. 강령 - 조선 여성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 고한 단결과 의식적 훈련을 기함 - 조선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전적 이익의 옹호를 기함 행동강령 1. 교육의 성적 차별 철폐 및 여자의 보통교육 확장 2. 여성에 대한 봉건적 사회적 법률적 일체 차별 철폐 3. 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4. 조혼 폐지 및 결혼 이혼의 자유 5. 인신매매 및 공창 폐지 6. 농민 부인의 경제적 이익의 옹호 7. 부인 노동자의 임금차별 철폐 및 산전 산후 2주 간의 휴양과 임금 지불 8. 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노동 및 야간작업 폐지 9.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10. 노동자 농민 의료기관 및 탁아소 제정 확립 첫 번째 행동강령에서 알 수 있듯이 근우회를 주도 하던 사회주의계도 여성 교육을 통한 계몽을 중시하 근우회 강릉지회 창립식 당일 대회장 분위기를 전하는 「엄중 경 계리에 강릉근지(槿支) 창립, 1명은 검속」 제하 기사가 『중외일 보』 1928년 8월 1일자 4면에 실렸다(강원도민일보 제공). 근우회 강릉지회 회원으로 ‘박문성’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양양 출생 박성녀의 옥중 사진. 1930년 12월 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됐다(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박문성(본 명 박성녀, 1911년생)은 1929년 12월 30일 근우회 경성지회를 방문했다가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이 에 근우회 본부 차원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경찰서장과 고등계 주 임에 엄중 항의방문하고 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1930년 4월 29일 서울에서 노동절(메이데이) 취지와 치안유지법 철폐 등을 담은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돼 1930년 12월 1일 경성복심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1년 1월을 언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국가기록원 판결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