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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4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9월의 독립운동가 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환국 후에는 안춘생과 함께 육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한국광복군동지회장 등을 맡으며 독립운동의 위업을 선양하는데 앞장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하였다. 신순호는 1922년 신건식과 오건해 사이에서 태어 났다. 부친 신건식은 1911년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 로 망명한 후, 동제사(同濟寺) 및 임시정부 활동을 함 께 했다. 1920년 전후 국내를 오가며 비밀리에 활동 하던 그는 일제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1922년 경 다시 상하이로 건너갔다. 같은 해 신규식이 서거 하자 중국군 군의관,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외과주 임 등을 맡으며 중국군에서 활동했다. 1937년 임시 정부에 복귀하여 선전부, 재무부 등에서 활동하며,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부친이 중국에서 활동하 던 중에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신순호는 4세 때 모 친 등에 업혀 상하이로 건너갔다. 1926년 3월의 일 이었다. 상하이에서 가족의 상봉이 이뤄졌지만, 가정 형편 은 순탄치 않았다. 1932년부터 임시정부가 대장정 을 시작하게 되자 어린 신순호는 부모를 따라 고난 을 함께 해야 했다. 학교 또한 제대로 다니지 못해 곳 곳을 전전해야 했다. 망명 가족의 설움을 겪던 그는 17세가 되던 1938년 11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 대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항일 예술 선 전활동을 전개하던 청년공작대에서 활약했으며, 한 국광복군 창설 후에는 총사령부에서 근무하였다. 1942년에는 부친을 도와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 부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중국 국민정부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에 자리를 중앙군관학교 군의관 시절의 신건식(왼쪽)과 박찬익(1931년). 신 건식은 신순호의 아버지이며, 박찬익은 박영준의 아버지이다.  중국 중앙군관학교 졸업 당시의 박영준(가운데, 1939년, 이상 김 학규 제공). 그는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 3지 대(지대장 김학규) 1구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