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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4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7월의 독립운동가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면서 프랑스에 대한 한국 인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유학생들의 대부분은 상하이에서 프랑스 마르세이유항(港)으로 향하는 배를 통해 들어왔으며 서영해와 같이 프 랑스에 남거나 유럽 각지로 흩어졌다. 한인 학생들은 면학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일을 도우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유럽 최초의 한인유학생 단체인 ‘유덕고려 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가 결성되어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고 외교 독 립운동을 이어갔다. 김갑수·황진남·이의경 등은 그중 주목할 인사들이 국가보훈부는 황진남 · 이의경(일명  이미륵) · 김갑수 선생을 7월의 독립 운동가로 선정하였다. 김갑수는 월 남 이상재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 에 투신했다. 황진남은 일찍이 미국 으로 건너가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보좌했던  인물이다. 이의경은 국내에서 경성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3 · 1운동 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쫓기게 되어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들은 독 일에서 ‘유덕고려학우회’를 조직한  이후 동지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 했다. 독일 내 한국독립운동은 유학 생들로 이루어진 ‘유덕고려학우회’ 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들 이 제작해 배포한 「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와 「한국의 문제」 등 홍보 물은 유럽사회에 한국 독립의 정당 성을 논리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7월의 독립운동가 황진남 · 이의경(이미륵) · 김갑수 선생 독일 유학생 단체 ‘유덕고려학우회’큰 활약 「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 · 「한국의 문제」 등 유럽사회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 알리는데 기여 독일에서 꽃 핀 유학생들의 독립운동 글 국가보훈부 제공 황진남 (黃鎭南, 1897~1970) 이의경 (李儀景, 1899~1950) 김갑수 (金甲洙, 1894~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