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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57 고 엄병길 회장님을 떠나보내시면서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혁명으로 국가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 정보부장인 김재규의 흉탄에 서거하시고 이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장군에 의하여 고 엄 회장님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신 뒤 감사원 감사위원 시절부터 참여하여 오시던 엄문의 중앙 종친회 회장직 을 수행하여 오시면서 기미대동보 발간에 이어 시조공에서 10대조까지의 묘역 성역화 사업을 성공 적으로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고 엄 회장님은 전두환 장군에 의하여 물러난 엄문의 인사 1급에서 차관급까지 11명의 인사와 협 의하여 시조공에서 10대조까지 실전된 묘역 정비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당시 80세가 넘으신 엄병언 영월지역 초대 종친회장님의 의견을 들어 과천정부 제2종합청사 지역을 결정한 한국 최고의 풍수철 학자 지창용 박사를 모시고 엄문의 선산 105만평 내에 조상님의 묘소가 실전된 곳을 중심으로 면밀 히 탐색 중 발견한 한 곳에 전통에 따라 시신을 모시고 매년 시조공 시향대제일 전야에 참배하면서 40여년 이상 지금까지 전통을 지키면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시 지창용 박사는 앞으로 반드시 엄문의 자손들이 발복하여 정치, 경제, 군, 관, 언론,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최고의 인물이 배출되며 심지어 대통령, 세계적인 노벨학자, 정치 가, 과학자 등이 배출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이한 사건은 전통에 따라 시신을 모시기 위하여 지정한 장소에는 고 엄병길 회장 외 운구에 참여 한 2명의 종현은 거구이신 영월 엄주원 종현과 엄호수 수원종친회장님이 참여하였고 나머지 종현들 은 산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모두 올라가신 뒤 30분이 지난 시점에 산 입구에 있던 엄장수 전 국 회의장 비서실장이 지역 행정최고 책임자가 전 도지사가 오셨다고 하여 찾아온다고 하여 엄상호 저 자신을 지목하면서 올라가서 전하라 하여 올라가 회장님을 산 아래로 내려 보내셨던 것입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아 부득이 두 어른들의 의견을 들어 70여cm 파들어 갔던 곳을 50cm 더 파고 내려가자 보통 흙에서 오색 백토가 나타나 환호를 하면서 급히 묻고 말끔히 정리한 뒤 표시를 하고 내려 왔더니 모든 분들이 술에 취하여 잠을 자고 있어 깨운 뒤 말씀을 들어보 니 최고 행정책임자가 엄 회장님을 찾아온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산불방지를 하던 말단 공무원의 말 이고 실제로는 정권이 바뀐 뒤인데 지역 최고 행정책임자가 올 이유가 없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하고 서울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회상하여 보아도 과거에 비하여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법원, 군, 검찰, 언론, 학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