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page

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45 우합작노선(左右合作路線)을 지지하다가 피습당한 적도 있었다. 또한, 항섭공은 1948년 4월 대한 민국 정부수립을 앞두고 남북정치협상 때 김구 주석, 김규식 선생 등 한국독립당 대표단 5명 과 함 께 평양회의에 참가하여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연석회의(全朝鮮政黨社會團體代表連席會 議)에 이어 개최된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南北朝鮮諸政黨社會團體)의 지도자회의(指導者會議, 속 칭 남 북요인회담)에 참가한 15인 중의 한 사람으로 4월 30일 공동성명 기초(共同聲明 起草)에 참여 한 바 도 있으시다. 공은 1949년 6월 김구 선생이 피살될 때까지 그를 보좌하다가 북한의 6·25 남침 때 납북되 셨으 며 1956년 7월 남북평화통일촉진회의(南北平和統一促進會議)의 상임위원 겸 집행위원을 지내 기도 하셨다. 공은 1962년 7월 30일 북한에서 ‘통일의 제단에 한 줌 흙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 고 타 계하셨다. 첫 부인 풍천 임씨는 교관(敎官)인 건호공(建鎬公)의 따님이시고, 둘째 부인 곡산 연 미당 (延薇堂)은 병호공(秉昊公)의 따님으로 임시정부에서 항섭공과 함께 독립운동한 공로로 199 0년 건 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셨다. 공은 장자 기동(基東), 차자 기남(基南), 장녀 기선(基善)과 사위 풍천 임동혁(任東赫)을 남기 셨다. 장녀 기선여사는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공로가 인정돼 정 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항섭공의 독립투쟁 공로를 인정, 1989년 3월 건 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부기) 지면 관계로 이번 호에서는 독립유공자 관련 현황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으신 네분 에 대 해서만 소개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종보에서 54분의 독립유공자 및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로 공 인되지는 않았으나 항일 투쟁 공적이 현저하신 10분의 선조에 대한 내용도 설명드릴 계획입 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독립 유공자 편 1부) 필자 엄현택 •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노사관계학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성대학교 정책학박사 • 전.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산업안전학회 회장 • 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