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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독립운동 • 신간회의 창립과 활동 67 신간회의 활동과 해체 지회가 활발하게 설립됨에 따라, 신간회의 중앙본 부와 지회는 여러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신간회운동의 영역은 크게 ①민중계몽 운동, ②민 족 · 민중의 생활 · 생존권 수호 운동, ③항일 민족운동 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주로 지회가 설립될 때, 명망 높은 중앙의 간부 를 초청하여 시국 강연을 추진했고, 지회에서도 수 시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주제로는 미신을 타파하 자, 조혼(早婚)을 금지하자, 담배를 끊고 아편을 추방 하자 등이 다루어졌다. ② 조선인 본위의 산업정책을 수립하라, 동양척식 주식회사와 같은 조선인 착취기관을 폐지하라는 주 장은 민족 전체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였다. 노동 조건과 노동 임금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민족 차별 철폐, 최저임금제 확립, 노동자들의 단결권 · 파 업권 보장 등은 노동운동과 결합한 투쟁 사항들이었 다. 지주의 소작인 노동 착취 및 소작권 임의 변동 폐 지, 고율 소작료 인하, 수리조합 설치 반대, 수리조합 횡포 타파 등은 농민들의 생존과 관련된 핵심 문 제 들이었다. 이러한 생존권 수호 투쟁은 지주제를 강 화하고 조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식민지 정책의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개선될 수 없는 사안들이었 다. 노동 · 농민 ·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신간회운동이 본질적으로 반(反)봉건 항일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③ 신간회는 조선인을 억압하는 모든 악법의 철폐 를 주장하고,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탄압을 규탄하 면서 자유를 요구하였으며, 학생 시위 운동을 3 · 1민 족운동과 같은 전 민족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시키려 하였다. 노동 · 농민 · 학생 운동과 연계한 신간회의 반 봉건 · 항일 투쟁의 사례를 각각 들어본다. 1929년 1월 식민지시기 최대의 노동자 투쟁이었 던 원산 부두의 대파업이 일어났다. ‘원산총파업’이 라 불리는 투쟁이었다. 총파업이 일어나자 신간회 중앙본부는 원산 지회에 적극 지원을 지시하는 한 편, 조선변호사협회 회장 이인(李仁)을 현장에 파견 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법률로 지원했다. 일제가 인 신간회 본부의 주요 간부들. 왼쪽부터 이상재(출처 독립기념관), 안재홍(한국학중앙연구원), 김준연(『조선일보』 1930.8.31), 한위건(『동아일보』 1933.6.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