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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 트릭 도슨 · 어거스틴 스위니 ·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 67 나누던 중 “일본의 신문에 는 일본군만이 승리하는 것 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그것 은 전부 허위이다. 금후 중 국이 미 · 영의 원조를 받아 서 사변이 장기화되면 일본 은 패망한다”고 말했다. 같 은 해 여름에도 “지금 일본 군이 중국의 중요 도시를 점령하고 있으나 결국 그것 을 중국으로부터 완전 탈환 하기 위해서는 전쟁은 장기화된다. 이 과정에서 일 본은 패전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1940년 가을에 도 서귀포 천주교회에서 천주교 신자들에게 “지금 일본이 승리하고 있어도 중국은 대국으로서 미·영의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후에는 일본이 패전할 것이다. 결코 일본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 전쟁이 장 기화할 경우 일본은 궁지에 빠질 것이다”라고 예언 하였다. 토마스 라이언은 1941년 12월경 유언비어 유 포 혐의로 체포되었고, 1942년 5월 26일 기소되어,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육군 형법 및 해군형법위반’으로 금고(禁錮) 2년을 선고받 았다. 이후에도 일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다가 1945년 5월 29일 강원도 홍천으로 옮겨 연금되었 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연금에서 풀려나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사제 활동을 계속하 다가 1971년 11월 20일 영면했다. 제주도 아일랜드 신부들 저항의 의의 1937년 7월 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후 1945년 8 월까지 전시체제기는, 일제강점기 가운데서도 일제 의 강제 동원과 수탈이 자행되던 가장 어두운 시기 였다. 더욱이 일제가 보도를 통제하고 그들의 승전 만을 과장 보도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희망 을 찾기 어려운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제주도 아일랜드 신부들의 일제의 패망에 대한 예언은 강제동원과 수탈에 시달리던 제 주도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주민들에게 독립의 희망 을 주는 메시지였다. 일제는 이를 ‘유언비어’라 하여 처벌했지만, 이들의 전세(戰勢) 판단과 예언은 적중 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유언비어’가 아니라 당시 정 세와 전황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정확한 정 세 파악에 의한 예언이었다. 서귀포 성당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는 나 토마스 신부 제의(왼쪽). 1937년 순교자 축일에 입 었던 것이다. 나 토마스 신부의 장례 미사(오른쪽, 가톨릭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