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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최현배 선생 67 고 있던 그가 아니고는 발상이 어려운 작업 이었다. 1953년 4월에 현행 맞춤법이 너무 어려 우니 이를 폐지하고 한글맞춤법통일안 이전 의 옛 철자법으로 고치라는 이승만 대통령 의 지시로 국무총리의 훈령이 공포되고 그 에 따른 맞춤법 간소화 안이 국무회의의 의 결을 거쳐 발표됨으로써 이른바 ‘한글파동’ 이 일어났다. 즉, ‘믿고, 믿어’를 ‘밋고, 미더’ 로, ‘같이’를 ‘가치’로 쓰라는 것인데 각계각 층의 격렬한 반대로 이 지시는 약 2년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그는 1954년 1월에 편수국장을 그만두고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떠났던 연희대학교로 돌아가 다시 교수로 취임하였다. 이 간소화 안을 반 대하자면 문교부를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 문이다. 그는 연희대학교의 교수로 돌아와 연구 생활을 하는 한편,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1951), 『한글의 투쟁』(1954), 『나라사랑의 길』(1958), 『나라 건지는 교육』(1963), 『한글 만 쓰기』(1970) 등의 저서를 연달아 내면서 한글 전용, 우리말 다듬기, 나라 사랑, 국어 교육 등에 관한 주장을 펴내 국어 발전에 절 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말년에 『우리말 본』에 짝할 우리의 옛말 문법 책을 집필하던 중 1970년에 작고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 1970 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2011년 10월 울산의 ‘외솔 최현배 선생 기 념관’에 세워진 동상. 동상은 입상만 2.5m 높이다(연합뉴스 제공). 울산 병영초등학교 구내에 세워진 최현배 흉상 (울산제일일보 제공). 1996년 병영초등학교 총 동창회에서 건립했다. 이번 10월 울산에서 공연되는 한글학 자 ‘외솔 최현배’ 선생 일대기를 다룬 연극 ‘한 글이 목숨이다’ 공연 배우 모집 공고 포스 터(울산매일 제공). 공연은 10월 8일 울산 중구문화의 전당을 시작으로, 10월 9~13 일 아트홀 마당에서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