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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윤세복(尹世復) 선생 67 여 민족종교를 뿌리째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의 날조 사건으로 투옥돼 모진 고문. 1945년 소련군에 의해 석방 윤세복을 비롯한 대종교 지도 자들은 1942년 12월 말에 잡혀 서 일제의 괴뢰 ‘만주국’의 영안 현 경무과에 설치된 특별 취조 본부로 이송된 이후, 여러 곳으 로 끌려 다니며 1년 6개월 동안 이나 모진 고문과 취조를 받았 다. 때문에 안희제를 비롯한 10 명이 옥사하기에 이르렀다. 그 런 뒤 윤세복을 비롯한 생존 인 사들은 1944년 4월 27일부터 6 월 26일까지 목단강 고등법원 에서 재판을 받았다. 여기서 소 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고 목단강 액하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임오 교변). 그러나 1945년 8월 12일 소·만 국경을 넘어온 소련군에 의해 석방되었다. 석방된 뒤 만주에서 대종교 부 활과 부흥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6년 1월 귀국하였다. 귀국한 뒤에도 해방된 조국에서 대종교 부흥을 위한 포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교리의 체계화를 위한 저 술활동에도 노력하였다. 1960년 2월 13일, 서울에서 향년 80세를 일기로 유 명을 달리하였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 였다. 대종교 총본사 환국기념 사진(앞줄 우측 세번째가 윤세복, 1946) 1946년 1월 윤세복 등 대종교 지도자들이 귀국할 때 주민들과 헤어졌던 고목 앞 공터 (1990년 강용권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