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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 오덕홍 · 김일언 · 정래의 의병장 67 청하군 죽장면 개흥사(開興寺)에 머물고 있을 때 인 8월 18일 강릉의병부대가 내려와 합류하였다. 이날 김일언 의병장은 죽장면 침곡(針谷)에서 일본 군 척후 1명을 사살했고, 8월 24일에는 일본군 영 천수비대를 유인하여 일본군 1명과 영천의 관포(官 砲)들을 체포하였다. 한인 관포는 타일러 보내고, 일본군 1명은 처단하였다. 일본군은 자양전투의 보 복으로 영일수비대와 청송수비대가 연합작전을 전 개했지만, 산남의진은 오히려 8월 25일 청하읍을 공격하여 일본군 1명을 사살하고 분파소 및 관계 건물 등을 불태우는 전과를 거두었다. 산남의진은 음력 9월 초순까지 강릉에 도착할 계 획을 세우고 북상 준비를 하면서 8월 29일 본진 병 력을 청하군 매현(梅峴, 현 포항시 죽장면 매현리) 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8월 29일에 척후병으로 부터 두차례 '추격하는 일본군이 청송에서 죽장으 로 이동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김일언 의병장은 조암(瞗 巖)으로 이동하여 매복하였고, 우 재룡 의병장은 작령(雀嶺)으로, 이세기 의병장은 광 천(廣川)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이세기 의병장이 입암리 뒷산을 지나던 중 골짜기 개천에서 일본군 이 안동 권씨 문중 회관 영모당(永慕堂) 대청에서 모두 누워 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시각이 저녁 9시 30분 경이었기에 이세기 의병장은 기습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선제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잠복해 있던 일본군의 집중 적인 공격을 받았다. 한참을 사격한 뒤 반응이 없자 일본군이 죽거나 도망간 것으로 판단하고, 입암서 원 근처 주막으로 이동해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하 산남의진 죽장 입암리 사적비 한말의병 항왜혈전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