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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5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5월의 독립운동 여 명의 방청객이 모인 가운데 발기회를 거행했다. 이어 7월 15일에 개최한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우 리의 앞길이 여하히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일천만 자 매의 힘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속행하려 한 다. 여성은 벌써 약자가 아니다. 여성 스스로 해방하 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 자”라고 끝을 맺는 「근우회 선언」을 마련했다. 근우회의 활동과 운영 변화 ① 근우회의 활동 근우회는 국내외에 69개의 지회를 조직하면서 전 국적 조직을 갖춘 여성운동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최초의 지회는 1927년 8월 22일에 창립한 전주지회 였다. 1927년에는 6개, 1928년에는 35개, 1929년 에는 24개, 1930년에는 4개의 지회를 조직했다. 지 역별로는 경남에 12개, 함남과 함북에 각각 10개, 전남에 6개, 경북에 5개 순으 로 조직되었다. 그밖에 황해도에 4개, 강 원도에 3개, 경성, 경기, 전북, 충남, 평 남, 평북에는 각각 2개가 설치되었다. 국 외 지회는 일본에 3개, 중국에 4개가 조 직되었다. 지회들은 본부와 연계하면서 지역 사정에 기반한 여성운동을 펼쳐나 갔다. 주로 야학을 설치하고 부인 강좌 를 개설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근우회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야학 설치였다. 20 개가 넘는 지회에서 야학을 운영했다. 근우회의 주요 활동인 강습과 강연은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회 원의 교양을 높이기 위한 강습회를 열었 다. 본부에서는 1927년 7월 7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제1회 부인 강습회를 열었 다. 둘째 여성문제를 공론화하는 장으로는 토론회를 활용했다. 본부에서는 1927년 10월 20일에 경성 천 도교 본당에서 “조선 여성의 해방의 첩경이 경제 독 립이냐 지식 향상이냐”라는 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 다. 셋째 지방 여성의 교양을 높이기 위한 순회강연 을 실시했다. 본부에서는 1929년 5월 경의선, 경부 선, 호남선, 경함선 등 철도 노선별로 나눠 순회강연 단을 파견했다. 근우회는 여성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공론 화했다. 1927년 6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들이 동맹휴학을 시작하자 조사위원을 파견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조사단을 파 견했고 이에 호응해 나타난 경성 여학생들의 시위 근우회 도쿄지회의 격문 「근우회 전국대회 금지 폭거에 대하야 전조선 피압 박 민중에게 격함!」(독립기념관 제공). 1928년 5월 26일, 27일 경성에서 개 최할 예정이던 근우회 전국대회를 종로경찰서가 금지하자 도쿄지회가 발표 한 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