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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5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2월의 독립운동 으로 쓰였고, 또 마른 나무에서 새 줄기가 나온다는 ‘고목신간’(枯木新幹)이란 말도 있으므로 ‘한’을 줄기 ‘간’으로 고쳤다. 원래 명칭과 ‘신간회’에는 모두 완 전하고도 새로운 독립국가 한국을 추구한다는 목표 가 담겼다. 명칭과 마찬가지로 강령도 공개된 최종안에 이르 기까지 여러 차례 총독부의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자료상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강령은 “① 조선민족으 로서 정치 경제의 구경적(究竟的) 해결을 도모함. ② 민족적 단결을 공고히 함. ③ 타협주의를 부인함”이 었다. 수 차례의 검열 끝에 다음 3개 항이 공표되었 다. “1.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2. 우 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3.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두루뭉술한 듯하지만, 최종 강령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였다. 신간회는 전 민족의 단결을 통하여 자 치운동을 배격하고 ‘새 줄기’ 즉 ‘새로운 한국’을 건 설하고자 하였다. ‘경제적 각성’은 식민지 체제 안에 서나마 한민족이 자생 · 자활하는 능력을 키워나감으 로써, 궁극적으로 정치와 함께 경제상의 독립까지 달성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1927년 2월 15일 신간회 창립대회가 경성 시 내의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 홀(대강당)에서 개회하였 다. 3개의 한글 신문은 창립대회를 생중계하듯이 보 도하였다. 회장에는 민족운동의 상징인 78세의 이상 재를 선출하였다. 이어 35인의 간사를 선출한 뒤, 2 월 17일 오전 4시 30분경에 폐회하였다. 2월 21일에 는 총무간사회를 소집하여, 7개 부서에 총무간사를 배정함으로써 중앙조직도 체계를 갖추었다. 신간회가 창립되자, 사회주의자들도 개인 자격으 로 신간회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신 간회를 지지하는 근거는, 1926년 말에 제기된 ‘민족 단일당’(民族單一黨)‘ 이론에 있었다. 이에 따르면 공 개된 대중조직의 형태로 민족 전체의 역량을 집중 하여 정치투쟁을 수행하는 하나의 당을 조직해야 한 다. 1927년 5월부터 신간회의 지회 설립이 활발하 게 일어난 배경에는, ‘민족단일당’론에 근거하여 각 지방의 사회주의자들이 신간회를 지지한 데 있었다. 신간회는 창립된 지 불과 10개월 만인 1927년 12월 에 지회 설치 100개 돌파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말 그대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1927년 6월 10일 열린 신간회 경성(京城)지 회 창립대회 광경(『조선일보』 1927.6.12) 1928년 2월 15일 열린 신간회 창립 1주년  기념식(『조선일보』 1928.2.16) 신간회 신의주지회 간부들의 신간회 창립 1주 년 기념 사진(1928.2.15, 성주현 제공). 신간 회 강령이 뒤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