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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5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1월의 독립운동 대구금연상채회 회원으로 서상돈 · 이일우 · 정재학 등은 상인 및 지주였으며, 김광제 · 김병순 · 이현주 · 길 영수 등은 전 · 현직 관료였다. 그리고 윤필오 · 서병 오 · 정해붕 등은 경상감영과 대구부의 서리(胥吏)였 다. 그들의 직함은 지주 및 상인, 전 · 현직 관인, 감영 의 서리, 그리고 유생이었다. 3.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국채보상운동 단체의 조직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21일 대구금연상채 회가 개최한 북후정 민중대회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 되기 시작했다. 2월 22일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 가 결성되었고, 곧이어 26일 국채보상중앙의무사가 설립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지도적인 기 관이 없었던 초기에 대한매일신보사와 황성신문사 등의 언론기관은 자연스럽게 구심점이 되었다. 초 창기에 국채보상기성회를 발기한 회원들이 보상금 의 수합기관으로 대한매일신보사를 배정했지만, 대 한매일신보사는 이를 사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편, 국채보상중앙의무사는 황성신문사를 임시수금 소로 지정하였는데, 황성신문은 3월 1일 광고를 통 해 국채보상중앙의무사의 국채보상금 영수소로 자 처하였다. 1907년 3월 28일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지 원금총합소규정」을 싣고 “총합소임시사무소는 대 한매일신보사 내”로 한다는 별보를 통해 국채보상 지원금총합소의 설립을 선언하였다. 1907년 4월 8 일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립하였다. 한편, 황성 신문사는 4월 중순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보성 관에서 발족하였다. 전자인 지원금총합소는 소장 윤 웅열, 평의장 조존우, 검사원 김광제를 선임했고, 후 자인 연합회의소 소장 이도제, 부소장 이용직을 선 임했다. 나아가 연합회의소는 조직을 개편하여 소장 이용직, 부소장 지석영을 선임한 뒤, 5월 8일에는 재 무이사로 한일은행장 조병택, 천일은행장 김기영, 농공은행장 백완혁, 한성은행장 한상룡, 창고회사장 조진태 등 서울의 5대 은행장을 추대하였다. 이로써 서상돈 김광제 이일우 서병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