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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4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12월의 독립운동가 기화된다. 장기화되면 일본의 승산은 없다”고 발언 했다. 1941년 2월 경에도 염군평에게 “미영(美英)과 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장기화를 꾀하는 일본 이 패전하는 것은 확정적이다”라고 하여 중일전쟁에 서 일본의 패전을 확신했다. 같은 해 4월 경에도 영· 일전쟁이 일어나면 소련 미국 등이 영국 측에 가담 할 것이므로 결국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일본의 전황 보도는 전부 허위다” 라고 발언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금후 2년 이내에 일본군이 패망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예언했다. 전 시체제를 구축하고 전쟁협력을 독려하던 일제 당국 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어거스틴 스위니는 1941년 12월 경 유언비어 유 포 혐의로 체포되었고 1942년 5월 26일에 기소되 어,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육 군형법 및 해군형법위반’으로 금고(禁錮) 2년을 선 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금고에서 풀려난 후에도 일 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연금 생활을 하다가 1945년 5월 29일 목포에 연금되어 있던 동료 아일 랜드 신부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옮겨 연금되었 다. 그곳에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다. 이후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 사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80년 1월 19일 별세했다. 토마스 라이언과 전시체제 토마스 라이언은 1907년 경 아일랜드 메이요주 그로스 오모라이나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천 주교를 신봉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후 신부로 서품되 었다. 1933년 10월 아일랜드 콜롬반 외방선교회 선 교사로 내한했다. 1934년 4월부터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천주교성당에 사제로 시무하면서 나신부(羅神 父)로 불렸다. 토마스 라이언은 1939년 봄,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로 서귀포공립보통학교 촉탁교원을 거쳐 잡화 상을 경영했다. 당시 경성일보·매일신보 제주분국을 맡고 있던 강붕해(姜鵬海)와 중일전쟁에 대한 대화를 나 토마스 신부와 신성유치원 졸업생들이 1952년 3월 22일 신성유치원에서  열린 졸업 미사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가톨릭평화신문』 제공).  토마스 라이언 신부(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