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page

66 2024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종기사를 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베델은 곧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 파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신문을 발행하 였다. 창간에 앞서 1904년 6월 29일에는 견 본판 신문을 먼저 만들었고, 정식 창간한 날 은 20일 뒤인 7월 18일이었다. 창간 당시에 는 하루에 6면 발행으로 영문판 『코리아 데 일리 뉴스』 4페이지와 한글판 『대한매일신 보』 2페이지로 영문판 위주의 2개 국어 신문 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두 언어 신문을 분 리하여 국한문판 신문과 영문판 두 개의 신문 을 발행했고, 1907년 5월에는 한글 전용 신 문을 새로 창간하여 3개의 신문으로 확대하 면서 장차 한·영·일 세 나라의 외교관계에 여 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 신문이 한·일 양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민족운동을 지원하여 일 본의 한국 침략에 큰 장애요인이 되었기 때문 이다. 대한매일신보의 영향력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코리아 데일 리 뉴스』가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과 이에 맞 대한제국기 언론사의 편집 모습 1906년 7월 2일 한국통감부의 경무총장이 일본 정부의 총무장관과 외무차관 에 보낸 보고서  「대한매일신보 주필 베델에 관한 건(件)」 (국가보훈부 제공)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베델을 고소한 고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