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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4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던 중 광주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1일 광주감옥으로 이송 중 경계가 소홀한 틈 을 타서 탈출하여 함평 먹굴산에 잠시 피신 했으나, 1909년 12월 5일 불갑산으로 이동 중 다시 일제에 체포되었다. 김원국은 광주 감옥을 거쳐 대구감옥으로 이송되어 그곳에 서 순국하였다. 김원범의 의병항쟁 김원범은 1907년 12월 형 김원국과 함께 김준(김태원) 의병진 휘하에 들어갔다. 김준 의 휘하에 들어간 김원범은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장성군 등지에서 광주수비대와 교전 하여 일본군 40여 명을 살상하였다. 김준 의 병진과 함께 1908년 3월 4일(음력 2월 2일) 에는 창평현 무동촌에 잠입하였다. 이때 김 원범 등은 마을 입구 돌담에 매복하여 요시다 카츠사부로 소좌와 부하 여러 명을 사살하였 다. 1908년 4월 25일 김준이 순국하자 1908 년 7월 전해산 의병장의 대동창의단에서 활 동했으며, 1908년 9월 조경환 의병부대에서 도포장으로 활동하였다. 광주 선암시장에서 형 김원국을 만나 함께 합류하기를 권유했고, 이에 형 김원국은 선 봉장으로 합류했다. 김원범은 부하 20명을 이끌고 영광군 황량면 밀정 변영서(邊永瑞) 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즉시 출동하 여 함평군 식지면 군평에서 체포하여 처형하 였다. 김원범은 1909년 1월 중순까지 전라남 도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조경환이 어 등산의 사동(寺洞)에서 전사하자 다시 전해산 의진으로 들어가 중군장을 맡았다. 1909년 2 월 광주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되 었다. 1909년 9월 2일 광주수비대에서 취조 를 받다가 스스로 혀를 깨물고 순국하였다. 김원국 · 김원범 형제 의병장이 활동한 광주 어등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