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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전투 3
영광스런 글로스터대내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트인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그들의 명령에 따랐고, 여기 죽었노라.
시모니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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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중대 전사
날이 어두워진 4월 23일, 기념공원 맞은편 언덕에 위치했있던 B중대는 공습당했습니다. 중공군의 박격포로 인해 나무 뒤로 은폐중인 B중대의 참호로 나무 파편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밤새 이어진 전투 후, 생존자들은 정상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탄약이 없는 채로 그들은 중공군 전선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120명 중 오직 20명만이 235고지에 도착하였으며 적에게 노출된 C중대도 235고지에 있었던 대대에 합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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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후의 오후
글로스터 대대는 이제 궁지에 몰렸습니다. 후사르 전차와 필리핀 보병대의 반격은 실패했으며 항공기는 주변에 '철의 고리'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전투로부터 충격받은 군인들은 오전 내내 임진강이 영국의 시골이라고 상상하며 버텼습니다. 군종 목사는 오후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도했지만 결국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포가격및 공중공습으로 인해 불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마치 대재앙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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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35고지 : '글로스터 고지'
중공군의 공격, 기관총이 난사되고 폭발이 번뜩였으며 시체들이 쌓여갔습니다. 새벽이 다다를 때, 중공군은 가장 높은 지점을 탈환했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글로스터대대원 한명이 반격을 가했고 이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내리막길엔 수백 명의 중공군이 더 몰려들고 있었고, 상황은 절막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제트기가 나타났고 정확인 지점에 '지옥폭탄'이라고 불리던 네이팜탄을 투하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글로스터대대는 용암처럼 뜨거운 소이탄으로 인해 산채로 타 죽어가는 중공군들의 비명을 들었고, 곧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4월 25일: 그로스터대대는 적이 들어올 수 없게 이곳 공원 옆에 있는 도로를 사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탄약은 다 떨어졌고 모든 유엔군은 철수하고 있었습니다. 꺼져가는 라디오를 통해, 글로스터대대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제임스 칸 중령은 소규모 그룹으로 탈출을 시도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습니다. 산속에서, 전투에 지친 그들의 비무장인 상태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그들의 앞에 북한의 수용소로 향하는 행진곡이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붙잡혔지만, 전 세계에 경외감을 일으키며 "영광스러운 글로스터내대"로 불리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