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page

66 2024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동청년단 시절부터 동지인 안희제(安熙濟) 와 협력하여 대종교 근거지 마련에 힘썼다. 1931년 10월 안희제를 발해(渤海)의 고도인 만주 동경성 일대에 토지를 구입하여 농장 을 개척케 하였다. 그것이 바로 1933년 설립된 발해농장(渤海農 場)이었다. 발해농장 설립 목적 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개척하 는 것이었다. 또 만주로 이주한 한국 농민들을 정착시켜 자작농 으로 육성함으로써 독립투쟁의 인적·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발해농장이 자리를 잡아가자 1934년 대종교 간부들은 총본 사를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 여 기에서 윤세복을 비롯한 대종교 지도부는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 개하였다. 이처럼 대종교 지도부 의 활동으로 점차 교세가 확장 되고, 교도들의 항일 민족의식이 고조되어 독립운동세력으로 발 전하여 가자 일제 당국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임오교변(壬午 敎變)’이라 불리는 일제의 대종 교 탄압 사건이었다. 임오교변의 빌미는 1942년 9월 조선어학회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극로(李克 魯)로부터 발송된 한 통의 편지 였다. 일제는 ‘널리 펴는 말’을 ‘조선독립선언 서’라고 하고, 또 ‘일어나라, 움직이라’는 구 절을 ‘봉기하자, 폭동하자’로 날조하였다. 이 를 구실로 국내외 대종교 지도자들을 체포하 현재의 액하감옥(전기 철조망이 남아있음, 흑룡강성 목단강시 양명구 철령하, 독립기념관  제공) 액하감옥 내부 전경(2017년, 노경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