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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4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고 안일의 생활만 꿈꾸어야 옳을 것인가? 농 촌으로 돌아가 문맹퇴치에 노력해야 옳을 것 인가? 거듭 말하노니 우리는 손을 서로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최용신은 이처럼 여성도 남성과 같이 사회 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더욱이 중 등교육 이상을 받은 신여성이야말로 가정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농촌에 뛰어들어 문맹 퇴치와 생활개선을 주도하자고 외쳤다. 농민 과 함께 생활하면서 문맹 없는 농촌, 잘사는 농촌 건설이 이상이었다. 학업 중단 후 샘골 마을에 파견 1929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황해도 수안 군 용현리로 첫 봉사활동에 나섰다. 동료인 김노득(金路得) 등과 함께 학교에서 배운 이 론을 실행하였다. 이듬해에는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실습 겸 농촌계몽운동을 병행하는 데 앞장섰다. 현지 활동을 통해 많 은 갈등과 자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난과 무지가 만연한 피폐한 농촌은 그로 하여금 학업을 중단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리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1931년 경기도 수 원군(현재 안산시) 반월면 천곡(泉谷, 일명 샘 골)에 조선기독교여자청년회(YWCA) 농촌지 도원 자격으로 파견되었다. 1934년 봄까지 2년 반 동안, 선생은 이곳 에서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게 되 었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천곡학원 (샘골학원) 인가뿐만 아니라 교사를 신축하 여 아동은 물론 청년, 부녀자 등을 대상으로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에 노력을 기울였다. 생활개선과 농가부업을 장려하기 위한 부녀 회, 청년회도 조직하는 등 주민들 상호간 신 뢰감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협성신학교 입구에서 기념촬영한 최용신(앞줄 오른쪽) 한글보급, 농촌봉사대와 최용신(앞줄 우측 두번째, 192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