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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2월의 독립운동가 66 2023년 2월 풀려났다. 독립운동계열의 분화와 혼란의 모습을 본 송몽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 · 향상 시켜 독립기운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확신하였다. 문학을 통한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서 기로 결심한 송몽규는, 우리 민족의 문학을 깊이 연 구하여 문학자가 되기 위해 1938년 4월 연희전문 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연희전문에서 윤동 주, 강처중, 백인준 등과 함께 민족의식의 앙양과 민 족문화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연희전문 문 과 학생들의 자치단체인 문우회의 기관지 『문우』의 편집을 맡아, 일제의 조선어 사용금지 및 일본어 상 용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윤동주와 송몽규 등의 시(詩)를 수록하였다. 송몽규는 연희전문을 졸업하 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42년 4월 교토제국대 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다. 세계의 역사 및 문학 을 연구함과 동시에 민족문화의 유지에 힘쓰기 위 해 사학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송몽규는 교토에서 윤동주, 고희욱, 백인준 등과 함께 민족의식 앙양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우리 민 족의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제의 징병 제도를 적극적으로 역이용하고자 했다. 일제의 징 병제도를 통해 우리 민족이 군사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일본의 패전이 분명해질 때 무력 봉기를 결 행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특별고등경찰은 1943년 7월 조선의 독립을 궁극 적 목적으로 실력을 쌓고 있던 송몽규를 ‘재교토 조 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 사건’의 주동인물로 윤동주 와 함께 체포했다. 송몽규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 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3월 7일 옥중에서 순 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송몽규 지사의 공훈을 기리 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창남 지사(安昌男, 1901~1930) 안창남 지사는 1901년 1월 29일 서울에서 태어 났다. 유복한 집안은 아니었으나 배움에 대한 열정 과 의지는 남달랐다. 1913년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 기를 처음 목격한 안창남은 우리 조선 사람도 배우 면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비행사의 꿈을 키워나갔 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안창남은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그는 오 사카의 자동차 학교와 도쿄의 비행기제작소를 거쳐 1920년 8월 오구리(小栗)비행학교에 입학하였다. 1921년 3월경 비행학교를 졸업한 안창남은 그해 8 안창남 지사. 『동아일보』(1921. 7. 1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