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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 트릭 도슨 · 어거스틴 스위니 ·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 65 다 위대하다. 신무천황은 처를 두 사람이나 두고 있 었다.”고 하고, 9월 14일에는 허봉학이 자신의 집에 걸어둔 ‘황실의 사진’을 설명할 때 야유하여 불경죄 로 처벌받았다. 패트릭 도슨은 1941년 12월경 유언비어 유포와 불 경 혐의로 체포되어 1942년 5월 26일 기소되었고,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 형법 및 해군형법위반, 불경죄’로 징역 2년 6월, ‘국방 보호법, 군기보호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 도합 징 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석방되어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사제로 시무하면서 1946년 5월부터 1959년 1월까지 한국독립당 국제외교행정특보위원 을 역임했다. 1959년 5월 20일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스페인, 영국에서 가톨릭 사제로 봉직하였 다. 1962년 6월 15일 아일랜드로 귀국하여, 1989년 2월 9일 더블린에서 별세했다. 어거스틴 스위니와 전시체제 어거스틴 스위니는 1909년경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천주교를 신봉하여 1935 년 아일랜드 성콜롬반신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목포천주교회에서 시무 했다. 1936년 10월부터 제주도 서홍리 천주교성당 에 사제로 시무하면서 서신부(徐神父)로 불렸다. 어거스틴 스위니는 1939년 2월 자신의 집에 온 천 주교 신자 염군평(廉君平)에게 “일본군이 소주(蘇州) 를 점령할 때에 많은 비전투요원을 살해하는 비인 도적 행위를 자행했다”고 폭로했다. 같은 해 11월에 도 중문리에 사는 주민에게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물자부족으로 패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1940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염군평과 대화 중“미국 이 적극적으로 원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장 일제 말기 제주 송악산 외륜에 구축한 동굴 진지(국가유산청 제공) 천주교 제주교구가 올해 3월 1일 발행한 『제주 복 음화의 사도들』(글쓴이 박재형, 제주교구 발행, 『가톨릭평화신문』 제공).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신 부들에 대한 제주 신자들의 기억과 회상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