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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 선생 65 공회의 전도사였다. 베델은 토마스 핸콕의 네 자녀 중 장남이었다. 토마스 핸콕은 1886년에 일본으로 건너 가 니콜이라는 사람과 함께 고베시 42번지 에 니콜 앤드 컴퍼니라는 소규모 무역상을 차렸다. 베델은 브리스톨의 명문 머천트 벤 처러스 스쿨을 졸업한 후 1888년에 일본으 로 건너갔다. 베델 형제 세 명은 새로운 무역 상을 설립해서 아버지 토마스 핸콕의 영업을 이어받았다. 베델의 무역상은 일본인들이 선 호하는 영국 물품을 일본으로 들여오고 일본 의 골동품 등을 영국에 수출하는 업종이었 다. 1899년 베델은 두 동생들과 베델 브라더 스를 설립하였다. 이 해 26세였던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 1873~1965)을 만 나 이듬해 고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베델 은 1888년부터 1904년 2월까지, 15년간 고 베에서 살았다. 당시 고베는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거주하던 활기찬 국제도시였다. 베델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날은 1904년 3 월 10일이었다. 러일전쟁이 터진 지 한 달 뒤 에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에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 나라에서는 많은 기자들이 전황을 취 재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에 몰려 왔다. 베델 은 서방 여러 신문의 본사에서 파견된 쟁쟁한 특파원들과 함께 취재경쟁을 벌였다. 그는 짧은 기간 『데일리 크로니클』 특파원 으로 근무하면서 특종 한 건을 터트렸다. 4월 16일자 제5면 톱기사로 실린 「한국 황궁의 화재(Korean Emperor’s Palace in Ruins)」 라는 기사다. 4월 14일 저녁 경운궁(慶運宮) 의 화재 사건을 다룬 이 기사는 머리에 ‘from our special correspondent’라고 쓰고, 끝에 다 ‘ERNEST BETHELL(어네스트 베델)’이라 고 밝히고 있어서 베델이 신문기자로는 첫 특 일본에서 활동할 무렵의 베델(1895년) 대한매일신보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사에 걸렸던 태극기와 영국 기(이상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