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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윤세복(尹世復) 선생 65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항일 투쟁 역량의 강화를 모색하 였다. 하지만 이때 일제는 만 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 군 단체와 그 지도자를 탄압 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25년 6월 중국 봉천성 경무처장 우진(于珍)과 조선총독부 경 무국장 삼시궁송(三矢宮松) 사이에 체결된 이른바 ‘삼시 협정(三矢協定)’이었다. 이 협정의 부대조항에 따 라 1926년 12월 길림독군 겸 성장(省長)인 장작상(張作 相)은 대종교 포교금지령을 발포하였다. 이는 교주로 취 임한 이래 적극적인 포교활 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 을 확충하여 가던 윤세복과 대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종교 지도부는 포교 금지 령 해제를 위해 혼신의 노력 을 기울였지만, 쉽지 않았다. 이에 1928년 1월 중·소 국경 지역이자 대종교 지도자 서 일(徐一)이 활동했던 밀산현(密山縣) 당벽진 (當壁鎭)으로 총본사를 옮긴 뒤, 교리 연구와 수도에 전념하였다. 대종교 총본사를 만주로 옮긴 뒤 만주 동경 성 일대에 농장 개척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에는 대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진(渤海鎭) 상경로에 있던 대종교 총본사 터 윤세복이 천진전(天眞殿)을 세우려고 했던 옛 발해궁전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