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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 유만수 · 강윤국 선생 65 민족분격대회’는 1945년 6월 24일 박춘금(朴春 琴) 등 친일세력이 일본인과 함께 부민관에서 조 직한 대의당이 한 달 후인 7월 24일 조선인을 전 쟁에 동원하기 위해 개최한 어용집회였다. 이에 1945년 1월 일본에서 귀국한 유만수와 조 문기가 일본강관(鋼管)주식회사에서 함께 근무한 강윤국을 비롯한 동지들을 규합하여 1945년 3월 조직한 대한애국청년당이 결행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거와 이 의거의 주인공 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자료의 부 족으로 인하여 부민관폭파의거에 대한 학문적 연 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유만수의 활동 안성군 금광면 개산리 출신인 유만수 지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조문기의 회고록인 『슬픈 조국의 노래』(민족문제연 구소, 2005)에 따르면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유만수는 1923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하여 만 주에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그 후 일본강관 주식회사에 동원되었다. 그가 독립운동에 뜻을 두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소작으로는 더 이상 연명할 수 없어 철도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 던 아버지가 일본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 았던 점, 공사 중 많은 안전사고가 발생했지만, 그 날 일당만 주고 조선인 노동자를 해고하는 현실 등 이 작용했다. 특히 자신의 아버지가 사고로 인해 발 을 다치고 해고되어 그의 가족들이 무일푼으로 농 촌을 떠나 도시빈민이 되어야 했던 경험이 큰 영향 을 끼쳤다. 식민지 조선의 이러한 현실과 경험에서 부민관 폭파의거 주역들(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1940년대 초 경성부 부민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