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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일제는 만주 지역 한인과 중국 항일 세력이 합작하자 이를 방해하기 위해 1932년 민생단을 조직하였다. 민생단은 조선 총독부와 간도 일본 영사관의 후원으로 만주 지역 한인의 자치를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한인과 중국인을 이 간질하려는 친일 반공 단체였다. 동만주의 한·중 연합세력에 한인을 간첩으로 보내는 등 반공·친일 활동에 주력 하여 한인과 중국인의 연대가 약해졌다. 민생당 사건이란? 군수품을 빼앗은 보천보 전투를 일으켰다. 이 전투는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되어 민중들에게 희망 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1930년대 말 일본군의 항일 연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이루어져 1940년대 근거지를 연해주로 옮겨 동북항일연군 교도려를 조직해 소련군 제88정찰여단에 편입되어 해방 전까지 그곳에서 훈련에 열중하였다. 한인 항일 연군의 일부 공산주의자들 주도로 1936년 동만주에는 조국 광복회가 결성되었다. 군사 활동과 국내 정치활동에 주력하였고 기관지 ‘3.1월간’을 발간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광범위한 반일세력을 모으기 위해 함경도 일대 천도교도 등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민족 통일 전선을 형성 하였다. 동북항일연군의 조선인 무장부대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보천보 전투를 들 수 있다. 모든 계층과 단체가 이념과 노선을 떠나 단결할 것을 주장하며 국내와 만 주·연해주 일대에서 해방이 될 때까지 투쟁하였다. 본토로 거점을 옮기다 |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 만주에서 활발히 전개된 무장 독립 전쟁은 193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중국 본토로 활동무대를 옮 겼다. 독립운동단체들은 보다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통일 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1935년 의 열단,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5개 단체가 중국 난징에 모여 독립항쟁정당인 민족혁명당을 결성 하였다. 민족혁명당 결성 당시 김구 계열과 임정 고수파를 제외한 중국 관내 독립 단체 대부분이 참여함으 로써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통일 전선 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계 가 당권을 장악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지청천, 조소앙 등 민족주의 계열이 차례로 이탈하면서 좌파 적 성향이 강해졌다. 민족혁명당은 일제와 봉건 세력, 반혁명 세력을 투쟁 대상으로 삼았으며 민주 공화국 수립, 토지 및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