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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시 함안지구 경찰 최후 방어 전황(戰況) 북한군은 적화통일을 목표로 1950.6.25. 미명에 소련 탱크 150여 대를 앞세우고 남침해 서울을 점령한 후 대구, 부산, 마산 일부를 제외한 전 국토를 점령함으로 국운은 풍전등화였다. 전황이 위급하매 UN군이 최후 교두보를 낙동강과 함안에 구축하고 국군 2개 사단을 경북 왜관 다부동으로 이동시킴으로써 함안전선에는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경찰관 6,800여 명과 미 상륙부대 일부병력이 인민군 4개 사단과 대치해 7월 30일부터 9월 16일 반격시까지 수많은 교전으로 북한군의 침공을 막아내는 위업을 달성했으나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전황만을 조각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부대별 전황을 보면 ① 전남경찰부대는 金應權(김응권)경찰국장(경무관)의 작전지휘하에 함안 법수와 필봉 등지에서 북한군 6사단과 교전해 적의 5연대장 이동빈 등 180여명 사살과 함께 많은 무기를 노획했으나 아군도 김동제 경위 등 52명이 전사하고 그 외 전사자도 많았지만 파악치 못함. ② 전북경찰부대는 鄭泰燮(정태섭)경찰국장(경무관)의 작전지휘하에 북한군 4사단과 함안 관내에서 수차례 교전 끝에 150여명을 사살하고 총기 150여 점을 노획했으며 아군도 경위 윤문선 등 34명이 전사했고 미확인 전사자도 많음. ③ 경남경찰부대는 崔天(최천)경찰국장(경무관)의 작전지휘하에 서부 경남 각 경찰서장 등과 함께 내서와 대산 등지에서 수차례 교전으로 360여 명을 사살하고 야포, 박격포 등 370여 문을 노획하는 등 남강을 적군의 피로 물들인 혁혁한 전공을 세워 미8군 사령관의 극찬과 함께 특히 대산전투에 참가한 58명 전원이 경남경찰국장의 표창을 받음. 아군도 200여 명이 전사했으나 역시 파악치 못함. 국가가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숨결이 아직도 산천에 숨쉬고 있는데 60여 년이 흐른 오늘, 참전경찰유공잫쇠가 경남도와 함안군, 보훈처의 도움으로 승전탑을 세우는 것은 영령을 위로하고 경찰의 전공을 후손에 전해주고자 하는 거룩한 뜻이니 앞으로 영구히 기억되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