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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61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로군정서 서로군정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기관이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한 독립지사들이 유하현 삼원포 에 모여 창설한 경학사, 1912년 부민단(扶民團)으로 개편한 뒤, 1919년 한족회(韓族會)로 발전하여 산하에 군정부를 조직했다. 서간도 유하 · 통화 · 흥경 · 환인 · 집안현 등 남만주 각 현에서 활동하던 민족지도자들이 삼원포(三源浦)에 모여 항일운동 단체의 통일기구 결성을 결의, 남만주 일대 독립항 쟁 총본영으로서의 군정부(軍政府)를 창설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군정 부의 명칭이 문제가 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안정근, 왕삼덕의 건의로 1919년 5월 대한 민국임시정부 관할하의 서간도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로 확대, 개편하였다. 서로군정서의 독판부(督辦府) 독판 이상룡, 부독판 여준, 정무청장 이탁, 군정청장 양규열, 내무사장 곽문, 법무사장 김응섭, 학무사장 김형식, 참모부장 김동삼, 의용군사령관 지청천 등으로 구성하여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투쟁과 한인사회 자치기관으로 활동하였다. ▶ 서로군정서의 활동과 국내진공 작전 신흥무관학교는 졸업생을 중심으로 ‘의용대’를 조직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여 성과를 거 두었다. 특히 채찬, 일명 백광운이 지휘했던 제 1중대는 1919년 5월 삼수군 영성주재소 습격과 1919년 7월 후창군에서 투쟁을 계속하였다. 또한 국내 및 서간도 지역의 일제통치기관을 습격, 파괴하고 민족 반역자와 친일파를 처단하 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7월 평안북도 강 계군의 삼강주재소와 문옥면 사무소를 습격한 것을 비롯하여 1920년 5월 문상식(文相植) 등이 경북 지역에서 관공서를 폭파하였다. 1920년 8 월 김동순, 한우석 등이 조선총독부 총독을 처단 하고 일제기관을 폭파하려다가 체포되었으며, 1921년에는 만주의 친일단체 보민회(保民會)를 해체시켰다. 서간도 한인자치단체 한족회와 서로군정서 본부 유적지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 서로군정서 중앙위원회 유적지(길림성 화전현 광장 일대) 서로군정서 본부(길림성 돈화시 액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