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page
64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6월의 독립운동가 가 한국주차군사령관 관저로 대한제국군 각 대대 장을 소집하여 해산조칙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조칙 낭독 후 시위대 병력을 오전 10시까 지 도수체조를 한다는 명목으로 훈련원에 집결하 도록 했다. 그런데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던 시위(侍衛)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 령이 군대해산에 분개하여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 였다. 중대장 보병 정위 오의선도 자결했다. 이에 시위 제1연대 제1대대, 시위 제2연대 제1대대 병 사들이 일제히 봉기하였다. 시위대 병사들이 봉기하자 일본군의 ‘한국주 차군사령부’는 일본군 제13사단 51연대 제3대대 병력을 주축으로 공병, 기관총 3문 등을 동원하 였다. 시위대와 일본군의 전투는 오전 내내 치열 하게 전개되다가 제1연대 제1대대의 탄약이 떨 어지면서 점차 줄어들고 결국 시위대의 병영이 점령당하고 말았다. 시위대의 봉기는 실패로 끝 났지만, 8월 5일 원주진위대의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이 확산되었다. 나주의 유격의병장 오덕홍 선생 오덕홍(吳德弘) 의병장은 1885년 4월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8월 12일 의병부 대를 조직하여 의병 20여 명을 이끌고 나주 등지에 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1909년은 1907년 8월 전국으로 확산된 의병전쟁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군의 이른 바 ‘남한대토벌작전’에 대응하여 강 력하게 전개되고 있던 때였다. 1907년 8월 의병전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는 데, 이 해 9월 기삼연 의병부대가 전남 장성에서 봉 기하였다. 9월 이후 일정기간 동안 호남지역에 서 일어난 새로운 의병부대들은 대부분 기삼연 의병 부대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주지역 의병들도 기삼연 의병부대와 연계되었 는데, 특히 김태원 의병부대는 기삼연 의병부대와 연대하여 9월 24일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였다. 김태원 의병장은 호남창의회맹소 선봉장으로 활 동했고, 때로는 별동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공격 하기도 했다. 또한 1907년 11월에는 전해산 등과 독립된 의병부대를 창설하여 나주 등지에서 활동 했다. 그러나 1908년 4월을 기점으로 일본군의 대 프랑스 일간지 『르 쁘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1907.8.4)에 실린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의 전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