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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53 복야공(僕射公) 삼성당공(三겛堂公)계 보력(譜歷) 고 본다. 그렇더라도 충의공(忠毅公)계가 일단 통합편집의 종회 원칙에 따라옴으로써 불완전 하지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대동보(大同譜) 발간을 향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엄문(嚴 門) 대동보(大同譜) 발간사(發刊史)에서 기억 해야 할 일이라 하겠다. 세부적인 미해결사항으 로 인한 일부의 비입보(非入譜) 사태 등 완전한 합의가 단번에 정리될 수 없었던 아쉬움은 차기 대동보 발간시의 과제로 남겨졌다. 그리고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는 편집 면에 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 다. 시조공 묘역의 조경도와 각 계파에 관련된 사진을 실었으며, 서문부터 국한문 혼용을 시도 하였고, 등재된 각종 비문에 국역본을 붙였으며, 모든 인명에 한글을 병기하여 신세대가 보첩을 대할 때의 거부감을 해소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 울인 일 등이다.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 발간에 삼성담공(三 겛堂公)계에서 찬영(贊永)공, 주채(柱彩)공이 중앙종친회 지도위원으로, 찬영(贊永)공이 대 동보소(大同譜所) 대의원, 찬무(贊務)공, 선사 (繕寫)공이 교정(校正)에, 주원(柱源)공, 주복 (柱福)공, 주석(柱石)공이 찬무(贊務)공이 직접 참여했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 참가호수 131호, 관 (冠) 110명, 동(童) 256명이며, 보첩(譜諜) 32 질(秩) 보유] 제1차 삼성당공계세계표(三겛堂公系世系表) 를 찬영(贊永)공 주관 작성, 주원(柱源)공, 주복 (柱福)공, 주석(柱石)공은 정리, 주철(柱喆)공, 주채(柱彩)공, 주삼(柱三)공, 근섭(槿燮)공이 힘을 모아 간행하여 보첩을 모시지 못한 종친에 게 배부했다. 10. 병자대동보(丙子大同譜) 병자대동보(丙子大同譜)는 1996년 서울 을 지로 4가에서 기표(基杓) 회장이 발행인, 기형 (基衡) 상근부회장이 편집인이 되어 양장본(洋 裝本) 7책(冊)으로 발간되었다.[인쇄소 : 대전 회상사(回想社)]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보다 한걸음 더 현대 감각을 살린 발전적 편집이다. 등재 인물의 기 사 내용까지도 국한문 혼용체로 기술한 것은 시 의적절하고 편의성과 활용성을 높인 바람직한 변화다. 아울러 그동안 대동보 편찬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연락두절 등의 사정으로 인해 미입보 (未入譜) 상태였던 많은 엄문(嚴門) 일족(一 族)이 보첩 간행에 대폭적으로 참여하여 누보 (派譜)의 한(恨)을 씻고 대동보(大同譜)에 등 재하게 된 것도 크게 기뻐할 일이다.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에서 시작되었던 명 실상부(名實相符)한 대동보(大同譜)로서의 통 합편집 원칙은 진일보했으나, 다시 드러난 문제 로는 울산문(蔚山門)에서 계대(系代)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일부 비입보(非入譜) 문중이 합 보에 의견의 일치를 이끌어 내지 못하여 계속 비입보(非入譜)로 남게 된 사실이다. 완전하고 명실상부(名實相符)한 통합대동보(統合大同 譜)의 발간은 다시 한번 차기로 미루어졌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에서는, 임인보(壬寅 譜) 때 삼성당공(三겛堂公)의 종지(宗支)문제 가 일단 정리된 일이지만, 종지(宗支)문제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