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page

12월의 독립운동가 • 트릭 도슨 · 어거스틴 스위니 ·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 63 7월 중일전쟁,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1945년 8월 패전하기까지 15년에 걸친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하여 일제 는 식민지 조선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개편하고 인력과 물자의 동원·수탈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수 탈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국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정신신앙생활까지도 지배·통제하려 하였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 도발 이후 일제는 전선 의 확대와 전세의 악화에 따라 부족한 인력과 전쟁 물자의 조달을 위해 식민지 동원·수탈정책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이러한 전시체제하에서 경제적 자원 수탈과 함께 최대의 희생을 강요하였던 것이 인력 동원이었다. 그들은 전선의 확대에 따라 부족한 병 력과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육군특별지원병령 (1938.2), 국민징용령(1939.7), 학도 전시동원 체제 확립 요강(1943.6), 해군특별지원병령(1943.7), 육 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1943.10) 등을 공포하 고, 1944년 4월부터 징병령을 식민지 조선에도 확대 적용하여 수많은 인력을 강제로 동원했다. 급기야는 여자정신(挺身)근무령(1944.8)까지 공포하여 여성인 력을 동원하고, 전시물자 제조공장 노동자나 전 선의 위안부로 전락시킴으로써 막대한 비인도적 희생을 강요했다. 일제는 1930년대 초부터 식민지 조선을 그들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려는 정책을 강력 하게 추진했다.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도발 이 후에는 군수공업동원법까지 발동하여 모든 산업을 군수품 생산에 집중하게 하고, 식량은 물론 생활필 수품까지도 배급제를 실시했다. 1939년 12월에는 제령(制令)으로 조선미곡배급조정령과 부령(府令) 으로 미곡배급통제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기아적인 미곡공출을 강요했다. 각종 지하자원과 광물자원도 거의 전량을 수탈하여 전쟁물자 생산에 투입했고, 생산 목표량을 할당하여 증산을 독려했다. 뿐만 아 니라 1941년 8월 금속회수령을 공포하여 철·동·청 동·황동·동합금 등으로 제작된 모든 금속류를 공출 하도록 하여, 유기(鍮器)·철기 등 금속 생활 집기 등 을 강제 공출하고, 심지어는 사찰의 범종이나 교회 의 종 · 철탑 · 울타리까지 수탈했다. 더욱이 기아적인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국방헌금’의 강제 징 제주도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옥고를 치른 가톨릭 사제들. 토마 스 D.라이언(앞줄 맨 왼쪽), 패트릭 도슨(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오스틴 스위니(뒷줄 왼쪽 두 번째).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제공. 패트릭 도슨 신부(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및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