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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 안춘생 · 조순옥 · 박영준 · 신순호 선생 63 옥,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 신규식가의 신순호, 대 중국 외교활동에 앞장선 박찬익가의 박영준, 이 들은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나 한국광복군에 입대 한 청년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부부였다. 이들은 50년간 축적된 독립운동의 역량과 역사를 압축적으 로 보여주는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창설에 앞장선 중견 지도자와 여성 독 립운동가, 안춘생-조순옥 안춘생은 1912년 8월 12일 황해도 해주에서 안 장근(안중근의사의 사촌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일대의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은 1909년 안 중근의거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1911년 소위 ‘105인 사건’의 주동자로 안명근이 지목되며 고초를 겪었다. 결국 그의 일가는 황해도 벽성군 금산면, 만 주(중국 동북) 지린성(吉林省) 무링현(穆陵縣),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흩어져 이산(離散)되었다. 1920년대 안춘생 일가는 무링 인근의 함경도촌을 거쳐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퉁허현(通河縣)·이란현 (依蘭縣) 등지로 이동하였다. 이때 안춘생은 퉁허 에 있는 양진학교(養進學校)에서 소학교와 중학 과정을 마쳤다. 독립운동과 관련 깊은 교사가 많았던 양진 학교에서 국어와 역사 등을 배운 덕분에 민족의식을 더욱 함양할 수 있었다. 만주에서 성장한 청년 안춘생의 인생은 일제의 만 주침략이 전면화되며 소용돌이쳤다. 1920년 일본 군에 의한 한인대학살(경신참변)을 목격했던 그는 1931년 일본군의 만주침공 후 중국인에 대한 일제 탄압을 재경험하며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일 본 관동군과 맞서 싸우는 중국 마잔산(馬占山) 항일 군의 활약을 듣고 이에 가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는 하이런현(海倫縣)으로 마잔산부대를 찾아갔다가 1932년 윤봉길의거 소식을 듣고 중국 관내로 들어 갔다. 이때 웨이하이웨이(威海衛)에 살고 있던 안정 근(안중근의 동생)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정부와 1938년 중국 창사(長沙)에서 열린 3 · 1절기념 공연단 일행. 앞줄 왼쪽에서 2번째가 안춘생 한국광복군 제2지대 간부와 미국 OSS의 한미합작기념 사 진 (1945.9.30, 중국 시안). 앞줄 왼쪽 3번째가 지대장 이범석, 4번 째가 안춘생(이상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 집』 제4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