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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윤세복(尹世復) 선생 63 길을 나선 것이다. 어렵게 서간도 환인현에 도착한 뒤 1911 년 5월(음력) 중국 봉천성(奉天省, 지금의 요 녕성) 환인현(桓仁縣) 서문 안에 동창학교(東 昌學校)를 설립하여 대종교 포교와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여 갔다. 이 학교의 교장은 그 와 함께 서간도로 망명한 경북 예안 출신의 이원식이 맡았고, 김규찬·김동석·김진 등이 교사로 있었다. 때로는 이극로·신채호·박은 식 등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이 곳에 머물 며 교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동창학교는 체 육·국사·국어 등을 중점적으로 교육하였다. 그것은 체육교육을 통해 독립군 전사다운 체 력을 단련시키고, 국어와 국사 교육을 통하 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 어는 김진이 담당했는데, 그는 주시경(周時 經) 밑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만주로 망명한 인물이었다. 국사는 박은식·신채호 등이 담 당하였다. 이처럼 동창학교가 독립운동가들의 근거 지가 되고, 민족교육의 중심기관이 되어가 자 일본 당국은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일본 영사관 측에서는 윤세용 · 윤세복 형제들을 협박하여 동창학교의 폐교를 종용하였다. 그러나 윤세복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이에 일본영사관 측에서는 중국 관헌들을 사주하 여 동창학교를 폐교시키고, 그곳에서 활동 하던 독립운동가들을 모두 추방하고 말았 다. 때문에 그를 비롯한 대종교 독립운동가 들은 1914년 백두산 부근의 무송현(撫松縣) 으로 옮겨 갔다. 1930년대 초 대종교 총본사 앞의 윤세복(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박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