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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 문일민 · 안혜순 선생 63 문일민은 1920년 12월 광한 단(光韓團)·대한독립단과 함께 평 양 북금융조합에서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압록강을 건 너 남만주로 탈출했다. 이후 상 하이로 간 문일민은 흥사단·대한 교민단·대한민국임시정부·민족 혁명당 등에 참여하면서 친일파 처단 공작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1년 9월 상하이 싼 위대학(三育大學)에 입학했다가, 1924년 중국 윈난강무학교(雲南 講武學校) 보병과에서 수학했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2월에 열린 제13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최석순·강창제 (姜昌濟)·강경선(康景善)·나창헌(羅昌憲)·김현구(金 玄九)·채원개(蔡元凱) 등과 함께 ‘임시헌법 제22조 제14항에 의거하여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 고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의’하는 의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다. 한국독립당과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근무 등 다양한 활동 한편, 1926년 침체 상태에 처한 독립운동에 활력 을 불어넣고 임시정부의 안전을 강화할 목적으로, 박창세(朴昌世)·강창제·이수봉(李秀峰)·이운환(李雲 煥) 등과 상하이거류민단 의경대(義警隊)를 주축으로 조직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결성에 참여했다. 같 은 해 남만주의 대표적 독립운동 통합조직인 정의부 (正義府)로 가서 군사참모 주임으로 활동했다. 정 의 부 산하 독립군의 훈련과 작전을 담당했다. 1928년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잘 알고 지내던 권기옥(權基玉) 삼촌의 중매로 안혜순(安惠順)과 재 혼했다. 1930년 3월 상하이로 귀환하여 잠시 중국군 상교(上校, 현재 대령급 장교)로 복무하였다. 1930년 5월 상하이에서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에 입단하 윈난강무학교 동학록(졸업앨범)에 실린 문일민 소개 내용(독립기념관 제공) 문일민 등의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탄 핵 관련동향을 파악,보고하는 일본 고등 경찰의 비밀보고서(1925.3.30, 국사편 찬위원회 제공) 문일민 등의 이승만 탄핵 결의안을 보도한 미주지역 한인 발행 『신한 민보』(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