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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요령성 시빈현의 양세봉 장군의 흉상 3부통합회의가 열렸던 길림 부흥태 정미소 기존의 단체를 중심으로 유일당을 조직하는 협의회파와 기존의 단체를 모두 해체하고 개인을 본위 로 조직하자는 촉성회 파가 대립하여 결렬되었다. 이에 민족주의진영의 유일당 운동을 주도하고 있 던 정의부는 신민부와 참의부를 결속해 민족진영 내부의 통일을 강화하고, 항일운동단체들에 대한 영도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1928년 7월 신민부·참의부에 3부 통일회의의 개최하였으나 또다시 결렬 되었다. 3부 통합회의가 결렬된 후 신민부·참의부는 물론 정의부까지도 자체 내의 분열이 표면화되기에 이르렀다. 김좌진·황학수(黃學秀)·정 신 등 신민부의 군정파와 김희산·김소하 등 참의부 주류, 이 청천·김동삼 등 정의부 탈퇴파가 주축이 된 촉성회 측은 1928년 12월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했 고 , 현익철(玄益哲)·이웅(李雄)· 김이대(金履大) 등 정의부 주류와 심 용준(沈龍俊)·이호(李虎) 등 참의부 일부, 송상하(宋尙夏)·독고악(獨孤 岳) 등 신민부 민정파는 1929년 3월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했다. ■ 1930년대 민족주의 항일 투쟁의 양대 산맥 무장 독립 전쟁은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운 이후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의 전 력이 크게 증강되면서 독립군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 다. 독립군 조직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인 항일 단체와 함께 한·중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독립군은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 (1929년)과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1931년)이었다.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남만주에서 활동한 조선 혁명군(총사령 양세봉)은 초기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