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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역사
과거부터 김천은 감천을 통해 남해안에서 소금과 해산물등의 화물을 운송 받아 김천 백사장에서 판매하거나 1차 가공하여 내륙으로 보급하는 등 상업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감호지구 일원은 수심이 깊고 수량이 풍부한 감천을 끼고 있어 겨울을 제외와 연중 나룻배 통행이 가능하여 1950년대 초까지 나룻배가 드나들 정도였으며, 수로 교통을 활용한 물류가 활발한 김천의 경제 요충지였다. 감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김천장은 조선 5대 시장 중 하였으며,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08년도에는 전국 최대시장인 대구 서문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거래량이 많은 곳이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건어물의 거래가 활발하여 전국적으로 물량을 공급하는 거저이었으며, 특히 생우(生牛)와 우피(牛皮)는 전국에서 거래가 가장 많아 외국 무역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이후 김천장이 감호동으로 연장되었으며, 영신상회를 중심으로 성장하여 감호시장이 되었다. 1954년에는 공설시장으로 허가를 받아 유지되고 있었으나, 2000년대 이후 산업 및 소비환경의 변화등으로 점차 쇠퇴하였으며, 쇠퇴에 따른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감호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