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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4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입하였다. 이후 1917년 10월 임시총회에서 회장에 선출되어 일본 전체 여자유학생회의 대표가 되었다. 대표로써 이 단체를 확대시 켜 갔으며, 『여자계(女子界)』를 기관지로 발행 하였다. 이 기관지를 통해 여성의식의 자각은 물론 민족의식 고취에도 앞장섰다. 동경 2·8독립선언 참여, 2·8독립선언 열기 를 국내 전파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1918년 1월 8일 전후 처리 지침으로써 미 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 되고, 그 해 11월 11일 종전이 이루어지면서 1919년 1월부터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재일 동경 유 학생들은 이를 한국 독립의 절호의 기회로 활 용코자 독립선언을 준비하였다. 이것이 바로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계획이었는데, 여기에 김마리아와 황애덕(黃愛德)을 비롯한 여자 유학생들도 참여하였다. 이후 2·8독립선언문 10여 장을 미농지에 복사하여 옷 속에 감추고 2월 17일 동경을 출 발하여 현해탄(玄海灘)을 건너 부산에 도착하 였다. 그는 3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 를 개의치 않고 귀국하였던 것이다. 대구에서 상해 신한청년당에서 국내의 독립운동을 촉 구하기 위해 밀사로 파견한 큰고모부 서병호 와 셋째 고모 김순애를 만났다. 이들은 안희 제(安熙濟)가 경영하던 백산상회(白山商會)로 가서 활동계획을 논의했다. 김마리아는 대구 로 가서 기독교계 동지들을 찾아 자신이 가지 고 온 2·8독립선언서를 보이고 거족적 독립 운동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광주에 가서 수피 아여학교의 교사로 있던 큰언니와 고모의 주 선으로 교직자와 간호원들을 초대하여 여성 2 · 8독립선언서(독립기념관 제공) 김마리아의 임시정부 군자금 전달 관련 판결문(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