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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3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향기나는 삶 이야기 있어요. 아울러 근래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많 은 자료들이 비밀 해제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 로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조 선의용대 · 조선의용군과 이원대 열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이들의 대일 무장투쟁사를 재조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까 합니다.” 이부회장은 사비로 이미 이열사 생가 부근의 토지 를 매입했다며, 지적도 사본까지 보여주었다. 또 가 까운 친척이 소유하고 있는 생가의 매입을 위해 여러 차례 협의했다고 한다. 이열사의 장렬한 최후와 그 진상 이원대 열사의 생애와 최후 순국 과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증언과 기록이 혼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부회장과 조인호 이사장에게 물었다. “이원대 열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제출 한 당시인 1970년대에는 조선의용대에 관한 연구나 자료 발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또한 이열사 와 함께 대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조선의용대(군)의 대부분이 북한 정권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열사의 순국에 대해 정확한 자료나 증언을 확보하기가 어려 웠습니다. 순국과정에 대한 내용도 문중 어르신의 증 언에 의하면 유골함을 갖고 오신 분이 중국 북경 일 본 헌병대 감옥에서 고문 순국하셨다고 전해주었다 고 해요”. 그 후 같은 조선의용대원이었던 김학철의 『항전별 곡』, 『최후의 분대장』에서, 그리고 직접 김학철 지사 를 만나 이원대 열사의 최후에 대해 고문 순국이 아 니라 (1943년 6월 17일 만32세로) 총살, 순국하셨다 는 구체적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이원대의 최후를 목 격한 일본 헌병대 통역관 곽동수가 탈출하여 조선의 용군으로 넘어와 나중에 증언했다 고 함). 물론 이러한 사실이 보다 신빙성을 갖기 위해서는 향후 이 원대 열사의 재판기록문, 곽동수 에 대한 자료 등의 입수를 통해 문 헌적 고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으로 이 원대열사기념사업회의 과제이기 도 할 것이다. 이원대의 중국 망명은 이육사 이원대 학술회의 관련 저서(2000년)와 조인호 이사장의 『이원대 의 항일투쟁』 저서 증언하는 조인호 이사장  독립관 앞의 이부회장과 조인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