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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61 정의부 본부 유적, 유하현 삼원포 민회 등 8개 단체의 연합체로서 1924년 11월 에 결성되었는데 입법·사법·행정기관을 설치하여 한인사회 지방정부로서의 대규모 행정조직을 갖추었다. 정의부 군사조직으로 서 참모장 김동삼, 군사위원장에 이청천, 사 령관에 오동진을 각각 임명하였고, 의용군 상 비조직으로 8개 중대와 헌병대 및 민경대를 두었다. 정의부의 군대는 동포 사회의 치안확 보와 독립군으로서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 作戰)을 통한 일제(日帝) 세력을 공격하는 것 이 주요 임무였다. 만주의 독립군은 일반적으로 의용군이라 불렸는데 정이형, 양세봉, 문학빈, 장철 호, 이규성 등이 중대장 또는 유격대장으로 직접 대일항전 전선에 참가하고 있었다. 신민부(新民府) 북만주에서는 김좌진, 양규열 중심으로 독립군의 통합운동이 전개되었다. 1925년 대한군정서·대 한독립군단 계열 등 10개 단체와 각 지역대표들이 영안현 영고탑(寧古塔)에서 부여족통일회의를 개 최하여 통합기관으로 신민부를 창립하였다. 신민부(新民府)의 군사조직은 총사령관에 김좌진(金佐 鎭), 보안대장에 박두희(朴斗熙), 제1대대장에 백종렬(白鍾烈), 제2대대장에 오상세(吳祥世), 제3대대 장 겸 별동대장에 문우천(文宇天), 제4대대장에 주혁(朱赫), 제5대대장에 장종철(張宗哲) 등이 각각 선임되어 편제를 이루었다. 만주 독립운동 단체는 모두 독립전쟁을 제1차의 목표로 하였던 만큼 자연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목릉현(穆陵縣) 소추풍(小秋風)에 성동사관학교 (城東士官學校)를 설립하고 연 2기의 속성 군사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여기서 배출한 인원은 도합 5백 여명에 달했다고 하며, 김혁이 교장, 김좌진이 부교장, 박두희·오상세 등이 교관을 맡았다고 한다. 3부통합운동 | 민족유일당회의 1920년대 후반 만주지역의 한인사회 자치단체이자 항일무장단체인 정의부(正義府)·참의부(參議 府)·신민부(新民府)의 통합운동은 정의부에서 시작되었다. 1927년 8월 정의부 제4회 중앙총회에서 만주지역의 운동전선을 통일하기 위하여 신민부와 참의부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것, 전민족운 동전선 통일을 위하여 유일당촉성(唯一黨促成)을 준비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유일당조직의 전단계인 3부의 통합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