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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51 복야공(僕射公) 삼성당공(三겛堂公)계 보력(譜歷) 서 1918년 3월 7일자 2책(冊)으로 발간된 총 제공(摠制公)계 파보(派譜)다. 전북(全겗)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총제공 (摠制公) 16대손 주덕(柱悳, 퇴휴당공(退休堂 公) 10대손)공이 주관, 총제공(摠制公) 손대 (孫代)인 사직공(司直公) 산수(山壽)공, 교리공 (校理公) 송수(松壽)공, 생원(生員)공, 강수(岡 壽)공 문중이 참여했다. 간기(刊記)에「대정(大 正) 7년3월7일발행」으로 적혀 있는 바, 이는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 모든 연호(年號)가 일 제(日帝)의 강압에 의해 일제(日帝) 연호(年 號)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비극 이다. 1918년은 무오년(戊午年)이지만 통칭 정사 보(丁巳譜)로 부르는 것은 발간 서문에「정사춘 시극침재수성(丁巳春始克 遂成)」이라고 기록된 바에 따르는 것이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는 정사보(丁巳譜)에 참여함으로써 경술보(庚戌譜) 이후 단절된 후 손들의 현황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경술보(庚 戌譜)에 무진보(戊굪譜) 중간본(重刊本)의 내 용만 실려 있던 아픔을 떨치고 무려 170년 만에 보첩(譜諜)에 삼성당공(三겛堂公)계의 현황을 싣는 감격을 맛본 것이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에서 정사보(丁巳譜) 에 참여했으나 현재 보첩(譜諜)을 모시고 있는 집안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 다. 복사본이라도 모시기 위해 정사보(丁巳譜) 의 소재 파악을 해야 하는데 열의와 정성이 부 족했음이 부끄럽다. 6. 계유보(癸酉譜) 계유보(癸酉譜)는 1933년 경성(京城) 삼 청 동(三淸洞)에서 13책(冊) 24권(卷)의 대동보 (大同譜) 성격으로 간행되었으나 삼성당공(三 겛堂公)계는 중앙과의 연락두절로 불참하여 누 보(걼譜) 되었다.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계유보(癸酉譜) 24권(卷)을 다 복사해둘 필 요가 없다고 보아 필요한 삼성당공(三겛堂公) 계가 등재된 제 13 권(卷)의 첫 3 쪽 천·지·현 (天·地·玄) 만을 복사하여 을해보(乙亥譜) 복 사본 제4권(卷)의 말미에 합본하여 보관하고 있다.] 7. 무자보(戊子譜) 무자보(戊子譜)는 1948년 전남 보성에서 4 책(冊)(序, 甲, 乙, 丙)으로 도유사(都有司) 문 영(文永)공이 발간한 총제공(摠制公)계 후손의 파보(派譜)다. 1945년 해방의 감격과 함께 삼성당공(三겛 堂公)계도 1948년 무자보(戊子譜)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사보(丁巳譜)를 주관했던 주덕(柱 悳)공이 서문을 썼다. 삼성당공(三겛堂公) 현 ( )공의 11대손 찬영(贊永)공, 12대손 주원 (柱源)공, 주복(柱福)공 등이 그동안 준비해 온 강진군(康津郡) 내 거주 동족 가승보(家乘譜) 를 재정비하여 입보(入譜)함에 따라 정사보(丁 巳譜) 이후 30년 29세(世)까지의 후손이 등재 되었다. 무자보(戊子譜) 발간에 삼성당공(三겛堂公) 계에서 찬영(贊永)공은 서기(書記), 주원(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