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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북쪽 악견산록에 적은 산이 하나 있으니 돌러싸임이 심히 귀이하고 그 위에 노송이 몇주 창연하게 서 있다.
이것이 졸당 박공의 옥산성 유지이다. 공은 조선조 초에 들어난 사람이다. 늦게 밀주로 부터와서 이곳에 우거했다. 단을 싸서 정자로 삼고 손수 소나무 여덟주를 심어 소요하면서 술도 마시고 시도 읊던 곳이였다. 이로써 이 산이 비로소 유명해졌다. 자손들이 대대로 벼슬이 이어지고 여덟분들이 인끈이 옥산정 소나무 숫자와 같이 걸였으니 세상사람들이 왕씨의 삼괴에 비하더라. 공의 덕을 닦음이 멀리 뻗혔음이요 오직 다른 사람보다 월등함을 알 수 있다. 임진병란을 당하였을때 공의 오세손 천우(天祐) 천기(天祺) 서구(瑞龜) 삼종형제가 곽공재우와 조공종도와 더불어 창의할때 이 정자에 올라 죽기로 맹세했다. 이는 더욱 아름답다 자랑핵도 족하도다. 이제 공이 세상을 떠난지 400여년제 정자는 퇴락하고 소나무도 겨우 몇주 남아있도다. 자손들이 선조의 유적이 민몰될까 두려워서 돌에 새겨 기록하니 아! 이것이 선조의 업적을 후손들이 계승하는 것이라 할것이다.
이로부터 삼가를 왕래하는 인사들이 산에 올라 가르키고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배회하면서 공의 높은 자취를 생각하게 하더라. 공의 휘는 총(聰)이요 자는 명옹(暝翁)이다.
효로서 정랑에 올랐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였다.
동양 신두선은 삼가 쓰다.
출처 : 밀성박씨 졸당공파 기사보 17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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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정에 관련한 아픈 역사는 아래 앨범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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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대병 밀양박씨 옥산정 유허비(密陽朴氏 玉山亭 遺墟碑), 옥산정 유허지(玉山亭 遺墟址)에 있는 안동권씨 옥산정(安東權氏 玉山亭) 암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