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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이동휘 선생 61 도중, 강한 눈보라를 만나 심한 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1935년 1월 31일이었다. 그는 러시아식 공산주의를 답습하여 이를 식민지 조선의 혁명에 그대로 적용하고자 했 던 이른바 정통공산주의자의 범주와는 거리 가 있던 인물이었다. 동양혁명의 책임자로서 한인공산주의운동에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 을 행사했던 국제공산당의 젊은 볼셰비키들 은 그를 ‘비공산주의적이며 심지어는 반공산 주의적 요소’를 지닌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 다. 그는 반대파였던 이르쿠츠크파 공산주의 자들과는 달리, 민족해방을 제1차적인 과제 로 설정했으며, 19세기 말 이래 근대민족운 동의 전통과 경험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주 류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젊은 볼셰비키들에게 종속되거나 휘둘리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하였다. 이동휘가 국제공산당 총서기 쿠지넨에게 보낸 전보(국가보훈부 제공) 이동휘 선생 별세 보도기사, 『동아일보』 1935년 2월 15일자(국 사 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