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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안창호 선생 61 이를 바탕으로 그 는 후일 민족유일 당 결성과 대공주 의(大公主義) 이 념을 주장했다. 서재필의 안창호 리더십 논평 서재필은 1884 년 갑신정변 실 패 후 미국으로 망명한 뒤 1893년 고학으로 세계적 명문인 컬럼비아 의과대학(지금의 조 지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한 국인 최초의 서양의학 의사로서 세계적 의 학 전문학술지에 연구논문도 여러 편 발표한 지성인이었다. 그는 의사가 되어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동지들과 독 립협회를 창립하여 한국의 자주적 근대화를 지도한 선구자로 활동했다. 그는 뛰어난 수재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938년 안창호 선생 서거 소식을 듣고 재미 한국유학생 소식지에 영어로 논평을 썼 다(서재필, ‘Random Thought in English’, 『도산 안창호 전집』 13권, 2000, 250~251쪽 참조). 서재필은 안창호를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 러햄 링컨에 비유하면서 그가 아는 독립운동 가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 에 따르면, 안창호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고 문제를 끊임없이 성실하게 공부하 며 연구한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방법과 방 향을 성실하게 연구하여 제시한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독립운동가들은 다수 있었 다. 그러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문제해결의 방법과 방향까지 정확 하게 전향적으로 제시하며 가르쳐 준 독립운 동가로는 안창호가 최고라고 했다. 서재필은 안창호가 명석한 두뇌로 문제를 끊임없이 자습하고 연구하며 실천과 경험에 서 또 학습하니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 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유학생들에게 설 명했다. 그는 또한 안창호의 민주적 성실성 을 주목했다. 안창호는 자기와 반대되는 의 견도 존중하여 끝까지 경청해서 취할 것은 취했다. 때문에 서재필은 안창호가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직원들을 자기 친구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서재필은 세계에는 비천한 지위에서 태어 나 뒷날 조국의 지도자가 되어 큰일을 한 뛰 어난 품성을 가진 인물들이 가끔 있는데, 미 국의 경우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러한 인 물이라고 했다. 한국의 안창호도 가난한 시 골 가정에서 태어나 정식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높은 이상을 갖고, 건전한 상식 과 높은 지식을 갖춘 고결한 품성의 지도자 가 되었다고 했다. 만일 안창호가 링컨과 같 은 기회를 가졌다면 더 큰 일을 달성하여 세 상에 더 알려졌을 것이라고 안창호를 논평하 였다. 안창호를 극찬한 서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