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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譜) 초·중간본(初·重刊本) 발간의 의미와 의의 와 가치는 천지개벽만큼 큰일이었다. 무진보(戊 굪譜)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은 후손 중 서지학 전문가에 의해 면밀히 검토 고찰되는 날이 오기 를 고대한다.] 2. 경술보(庚戌譜) 경술보는(庚戌譜) 춘·하·추·동(春·夏·秋· 冬) 4책(冊)으로 철종 원년(1850년) 도유사 (都有司) 견 (堅)이 현풍(玄風) 솔례(겢禮)에서 발간한 복야공(僕射公)파의 파보(派譜)다. 등재 내용은, 춘(春) 책(冊)에 무진보(戊굪 譜) 중간본(重刊本)에서 생략했던 초간본(初刊 本)의 서문과 묘비문 등을 전량 등재하고, 이어 서 경술보(庚戌譜) 발간 서문, 퇴휴당공(退休堂 公) 덕록(德걧, 17세)공과 그 선대(先代)인 수 영(壽永, 16세)공의 묘비문을 실었다. 하(夏), 추(秋), 동(冬) 책(冊)에는 무진보(戊 굪譜) 중간본(重刊本) 지(地) 책(冊)의 내용에 그 이후 출생한 후손들을 등재했다. 무진보(戊굪譜) 간행 100여년을 넘기고서야 복야공(僕射公)파 파보(派譜)가 다시 간행을 보게 되었으니, 그동안 겪은 국운의 요동과 시 국의 변화무쌍함을 또 한번 생각하면서 경술보 (庚戌譜)를 간행한 선조들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삼성당공(三겛堂公)계는 무진보(戊굪 譜) 중간본(重刊本)에 21세와 22세 일부까지 수록되어 있던 그대로 경술보(庚戌譜)에 실려 있을 뿐이니, 삼성당공(三겛堂公)계가 결국 경 술보(庚戌譜)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안타까움만 을 확인하게 되어서 새삼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에서는 경술보(庚戌 譜)에 누보(걼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 히 경술보(庚戌譜) 원본 1질(秩)을 보유하고 있음은 스스로 경하하고 있다. 10질(秩)을 복사 하여 종친들이 나누어 보존하고 있다. 3. 을해보(乙亥譜) 을해보(乙亥譜)는 고종 12년(1875년) 경성 (京城) 원남동(苑南洞)에서 15책(冊)의 대동 보(大同譜) 성격으로 간행되었으나, 삼성당공 (三겛堂公)계는 연락두절로 불참하여 누보(걼 譜) 되었으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15책(冊)을 모두 복사해 둘 필요는 없다고 판 단되어 꼭 필요했던 서권(序卷)과 제4, 5권 (卷)만을 복사본으로 보유하고 있다. 4. 신축보(辛丑譜) 신축보(辛丑譜)는 광무 5년(1901년) 경성부 (京城府) 내에서 간행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시 운이 참담하여 중도에 폐지됨에 따라 미간(未 刊)되었다. 그러나 이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했 던 삼성당공(三겛堂公)계의 전라남도강진종중 세계(全갥南道康津宗中世系)가 26세손과 극소 수지만 27세손까지 작성되어 보존된 것이 차기 (次期) 정사보(丁巳譜) 발간 시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다. [삼성당공(三겛堂公)계 全갥南道康津宗中世 系 : 관(冠) 24, 동(童) 31] 5. 정사보(丁巳譜) 정사보(丁巳譜)는 전남(全南) 보성(寶城)에 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