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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25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1918년 12월 29일 도쿄[東京] 유학생들은 메이지회관에서 학우회 주최로 유학생망년 회를 열었고, 이튿날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동 서연합 웅변대회도 개최하였다. 웅변대회에 는 4~5백명의 학생들이 모여 조국광복운동 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서 춘, 이종근, 윤창석, 김상덕 등이 연사로 나 서 세계사조의 변화와 민족자결의 대원칙에 입각하여 자주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열 변을 토하였다. 학생들의 연설이 있은 후 김 도연은 운동을 주도할 실행위원을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방안을 강구하게 하자고 제의 하여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실행위원은 그를 비롯하여 최팔용, 서춘, 백관수, 이종근, 송계백, 김상덕, 전영택, 윤창석, 최근우 등 10명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일제경찰의 감시와 미행을 피하며 비밀리에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이 단 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 및 민족대 회소집청원서를 작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은 이 광수가 작성하고 그것을 영문과 일문으로 각 각 번역하여 일본의 조야와 외국공관에 발송 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각 대학에 있는 유 학생들에게 연락하여 빠짐없이 거사에 참가 시켜 도쿄 시내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 위를 펼치기로 계획하였다. 약 2개월에 걸쳐 준비한 끝에 드디어 1919 년 2월 8일 아침에 준비한 유인물을 꾸려 들 고 조선기독교청년회관으로 향했다. 유학생 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임의 명 칭을 ‘동경유학생 임시총회’로 하였다. 기독 교청년회관은 거사 시간인 오후 2시보다 1시 2 · 8독립선언서 앞부분(독립기념관 제공) 현재 도쿄 재일한국인YMCA회관 입구에 세워진 ‘조 선독립선언 1919 2 · 8독립선언 기념비’(김학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