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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24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에서 퇴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1927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영 화를 공부하였고, 귀국한 뒤에는 ‘먼동이 틀 때’라는 영화를 각색·감독하여 같은 해 10 월 26일 단성사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그리 고 그 해 11월 22일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 으로 체포되었던 경성고보 동창생 박헌영이 병 보석으로 출옥하자 그를 만났다. 이때 일 제의 고문과 병으로 형편없이 변해버린 박 헌영의 몰골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 하여 일제에 대한 분노를 「박군(朴君)의 얼 굴」이라는 시에 담았다. 허가 받지 못한 노래. “그날이 오면, 이 몸 가죽 벗겨 북 만들어 여러분의 앞장을 서오 리다” 심훈(심대섭)은 1931년 조선일보를 사직 하고 경성방송국 문예담당으로 잠시 들어갔 다가 사상문제로 곧 그만두었다. 그리고 부 모가 살고 있던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富谷里)로 낙향하여 창작생활에 정진하였 다. 여기서 1932년 그동안 발표한 시들을 묶어 시집 발간 작업을 추진했다. 그것이 바 로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집이었는데, 안 타깝게도 조선총독부 당국의 검열로 빛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해방 직후에야 간행되 어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1933년 충남 당진에서 장편 소설 「영원의 미소」를 집필하여 7월 10일부터 조선중앙 일보에 연재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조선중 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취직하여 상경했지만, 곧 그만두고 다시 당진으로 낙향하였다. 이 듬해에 장편소설 「직녀성(織女星)」의 집필을 시작하여 3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연 재하였고, 당진에 필경사(筆耕舍)라는 자택 을 몸소 설계하여 지었다. 여기서 1935년에 「상록수」라는 농촌계몽 소설을 집필하였다. 낙향하여 「상록수」 완성, 동아일보에 연재 해 큰 호응 얻어 「상록수」는 당진군 부곡리에서 전개되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소재 로 한 작품이었다. 당시 부곡리에서는 장조 심훈(심대섭) 부고 기사(왼쪽,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