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page

60 2024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황해도 장연의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 김마리아 선생은 1892년 7월 11일(음력 6 월 18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아버지 김윤방 (金允邦)과 어머니 김몽은(金蒙恩) 사이의 세 자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 (光山)이고, 마리아는 개신교의 세례명인데 핵심공적 일본 동경의 2 · 8 독립선언  및 국내 3 · 1운동에 적극 참 가하였다. 임시정부에 독 립자금을 전달한 뒤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상 해로 망명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8 년 미국에서 근화회를 조직 하고 회장으로 활동했다.   ■ 건국훈장 독립장 김마리아 선생 동경 2 · 8독립선언 참여 후 선언서 휴대 귀국, 3 · 1운동 확산에 크게 기여 평생 독신으로 독립운동 헌신 조선의 ‘혁명여걸’로 불려 “국내의 일반 인민은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 다는 말을 듣고 소수인의 조직이거나 인물의 좋고 나 쁨을 불문하고 다 기뻐하여 금전도 아끼지 않고 적 (敵)의 악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설혹 외지에서 임 시정부를 반대하던 자라도 국내에 들어와서 금전을  모집할 때에는 다 임시정부의 이름을 파는 것을 보아 도 국내 동포가 임시정부를 믿는 증거이다. 임시정 부를 안 팔면 밥도 못 얻어 먹는다. 적은 가끔 임시정 부의 몰락을 선전하여도 인민은 안믿는다. 소수로 됨 은 혁명시에 피할 수 없는 일이요 인물은 변경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수만의 유혈로 성립되어 다수 인 민이 복종하고 5년의 역사를 가진 정부를 만일 말살 하면 소수는 만족할 지 모르나 대다수는 슬퍼하고 외 인(外人)은 의혹.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개조하자.” - 대한애국부인회 대표로 참가한 1923년 상해 국민 대표회의 발언 중에서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92년 7월 11일(음력 6월 18일) 황해도 장연 출생 ● 1913년 정신여학교 교사 ● 1917년 10월 조선여자유학생친목회 회장 ● 1919년 2월 일본 동경, 2·8 독립선언에 참여 ● 1919년 3월 국내 3 · 1운동 참여, 서대문감옥 투옥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 1919년 11월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 전달 ● 1921년 8월 중국 상해 망명 ● 1922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황해도 대의원 선임 ● 1923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참여 ● 1928년 미국에서 근화회 조직, 회장 역임 ● 1944년 3월 13일 평양기독병원에서 순국